#07. 나비

꽃 같이, 나비 같이

by BAEK Miyoung

여름 냄새가 났다.


그 전까지,

봄엔 봄바람에 기대어 시간을 떠나보냈다. 한국에 돌아와 맞는 첫 봄의 그늘 속에서- 이제 잠깐 머무르듯 지내다 떠나는 곳이 아닌, 진득이 발 붙이고 살 이 땅의 냄새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작업실은 착실하게 나갔지만 예의 해야 할 작업보다는 그 이외의 것들을 살폈다. 걷거나 차를 마시거나, 책을 보거나 물가를 걸으며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구경했다. 그리 대단치 않은 일들로 살뜰한 봄이 갔다.


이러는 틈틈이 성실하게 자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상은, 그 해가 내게 너무 괴로웠다고 이제야 털어놓는다.

또래들처럼 현실감 있게 살지 못하는 나. 작은 내 재능을 앞세워 작업 뒤에 비겁하게 숨어 지내는 나.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 보면 답 없는 괴로움에 빠져들었다. 과대평가. 자만. 오만. 나 스스로 속 빈 풍선처럼 부풀려지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날들을 걸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보니 한 해가 절반 가까이 지나 있었다.

바다 곁을 많이 걸었다. 보고 또 봐도 좋지 아니한가.


6월 말이 돼서야 아차-싶어 졌다. 탈탈 털어봐도 해놓은 작업은 얼마 안 됐고 예정된 마감은 바야흐로 6개월가량 남아있던 것이다.


sticker sticker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덕분에 6-10월까지 작업에 불태울 수 있었다.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되는구만. 어쩌면 저리 한량처럼 지내면서도 언젠가 작업을 끝낼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 작업해왔던 패턴이 있던지라 내 나름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 물론 12월이 가까워져 왔을 땐 이 몹쓸 근자감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싶었지만!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나비인 만큼 나비 단독 씬도 많고 떼로 등장하는 씬도 많다. 특히 화면 여기저기에 꽃이 만개하듯 등장하는 나비 무리는 이미지 만으로도 무척 강렬하다. 물병 안에 '갇혀있는' 주인공 나비의 상황과 상반되는 자유로운 상태의 나비떼. 그들을 그리고 화면을 수놓는 것은 나름 기다려지는 과정 중 하나였다. 자칫 벌레들이 드글드글한 느낌이 들어 관객들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지, 혹은 비슷한 형태와 컬러로 지나치게 단조로워 보이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여러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다.


나비는 정적인 동시에 동적이다. 약한 동시에 강하고 날아가는 동시에 날아온다. 전체적으로 애니메이팅이 많이 들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역동적으로 비치지는 않는다. 정적인 느낌이 많은 이 애니메이션에서 이 나비 무리에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실어줬으면 싶었다. 어떻게 하면 화면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일지 또한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향점 중 하나였다.


나비는 각각의 개별성을 가지되, 하나의 유기체로 보이도록 연출했다. 이렇게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걸 고려하며 화면 속 이미지를 다듬어 나갔다.

우선 나비들이 등장할 배경 위에 간략한 선 만으로 형태와 움직임을 테스트한다.


Pa2.jpg 나무 가지위에 앉은 나비떼. 내가 이 씬에 붙인 이름은- '부케'
Bouteille+nabi2.jpg 나비인데 나방같아 보여 슬픈, 선(line) 나비들.
테스트00.jpg 홀로 남겨지는 병 속 나비와, 무심히 떠나버리는 나비 무리 test.




이렇게 형태와 움직이는 동선/타이밍이 정해지면, 면과 색을 입혀 나비를 나비답게 매만져준다.(나방 같은 나비, 안녀엉-!) 나비들의 컬러는 같은 계통의 푸른 색상을 사용했지만, 화면의 즐거움을 위해 명도나 채도에 살짝씩 변화를 줬다.

9.png 푸른 빛깔의 나비 부케.
Qa.Na_00694.png 나비 왕관을 쓴 유리병
12.png 나비 날다.

나비 무리가 유리병을 떠나 창 밖으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아래는 그 씬을 연출할 때 쓴 Long BG다.

1.go to flower2 (0.00.04.jpg 나비야 날아가라, 저 멀리-

이 장면의 최종 영상 화면.



아래는 '부케-씬' 테스트 영상이다.(본 애니메이션에는 이런 장면이 없다)



나비가 그저 가만히 이미지만으로 머무는 것과, 이처럼 날갯짓이 추가된 이미지가 어떻게 달리 느껴지는지 비교하면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약간의 날갯짓이 추가된 것 만으로- 화면 속 나비는 더 이상 종이 속에 머무는 나비가 아닌, 어느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나는 이런 점이 애니메이션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이며, 이 과정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말하고 싶다.


나는 이 과정을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는다'라고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