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애니:Dancing in the Rain

나 대신 춤을.

by BAEK Miyoung

확실히 작년에 작업을 쉬었던 것이 올해 들어 효과를 발휘하나 싶다.


한동안 마른 바닥이었던 머릿속 작업의 '샘'에 조금씩 온수가 솟는다. 이렇게 퐁퐁 피어나는 생각들은 짧은 꽃의 생애처럼 허무하게 지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종종 운 좋게 손에 쥐어지는 놈들도 있다.(그것이 멋진 것이건 아니건간에) 그 사이 부지런히 작업했던 글쓰기가 또 형편없이 게을러져 버렸지만, 몸은 하나요 손가락은 열개뿐인지라 어쩔 도리가 없다.


올해 작업 스케줄은 1년 단위의 큰 프로젝트 하나와, 일주일~한 달 단위의 미니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이 함께 병행될 것 같다. 전자는 3월까지 프리 프로덕션이 끝나 현재 제작 중에 있고, 미니 애니메이션은 5월 현재까지 총 2편이 마무리됐다.


첫 번째 미니 애니메이션은 2월에 작업했던 Lunar Calendar였다.

3.jpg 2월에 만든 첫번째 미니애니메이션

그리고 그를 잇는 두 번째 미니 애니메이션은 Dacing in the Rain이라는, 귀엽고 흥이 넘치는 애니메이션이다. 사흘 동안 휘몰아치듯 작업했던 Lunar Calendar에 비해 2~3주라는 넉넉한(?) 텀을 가지고 작업한 터라 확실히 이전보다 영상의 질이나 캐릭터의 움직임이 보기가 좋다.


1. 시작


시원하게 봄비가 내리던 날 밤. 어쩐지 머릿속에 영화 Singing in the rain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창을 통해 흘러들어온 비릿한 비 냄새가 초여름을 상기시키는 싱크러운 풀냄새와 함께 섞여 풍겨왔다. 그것이 Dacing in the Rain을 구상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머위.jpg 풀, 풀을 그리자!!(정확히는 '머위'이미지이다.)

빗방울, 매끈한 대와 넓은 잎사귀를 가진 초록 식물, 댄스- 애니메이션에 담을 내용의 전부였다. 미니 애니메이션을 할 때는 비교적 '즐겁게', '즉흥적으로'를 모티브로 그 당시 느낌대로 가볍게 작업하려 애쓴다. 스토리보드니, 프리 프로덕션이니, 작가의 의도니.. 그런 심오한 것은 잠시 내려두고 '그저 재미있게 작업하자!'라는 마음에 집중하려 한다. 결국 그마저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한 '노동'의 구간에 접어들면 유지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지만 가능한 한 나 스스로 즐거운 작업을 만드는데 집중한다.


배경의 느낌을 보기 위해 자료 사진을 참고해서 첫 테스트 이미지를 그렸다.

기획.jpg 첫 테스트 이미지.

컬러와 텍스쳐의 느낌을 보기 위해 그려본 테스트 샷.

sc1''.jpg 풀의 질감이 많이 거칠다. 후에 부드러운 느낌으로 수정했다.
댕싱물고기_컬러_보정.jpg 이 또한 영상 작업을 위해 테스트로 그려본 일러스트였다.


2. 제작


(1) 레이아웃

첫 미니 애니메이션 때와 마찬가지로 복잡한 프리 프로덕션의 과정은 없었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여러 장면을 우선 상상한다. 그리고 그중 괜찮은 장면을 레이아웃으로 그려 나열한 후, 영상 흐름이 자연스럽도록 재배치하는 정도로 그 과정을 끝냈다. 영상은 그저 비가 내리고, 찰나의 순간 토끼들이 흥겹게 춤을 춘다-가 끝이다. 특정한 스토리나 서사적 구조가 중요한 애니메이션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했던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레이아웃-모음.jpg 간략하게 그려진 레이아웃 설정샷


(2) 애니메이팅

카메라 워킹이 비교적 단순한 편이라 아트워크 작업에서 애를 먹은 부분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캐릭터가 춤을 추는 장면을 만들려니 막막했다. 상상은 상상으로 머물 때 가장 신나는 법인 것을! '요로케 요로케 춤을 추게끔 해야겠어!!'라고 했던 막연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니 춤동작이라던가, 박자라던가 예상외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아졌다. 움직임의 모습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테스트 영상을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당연히 결과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만들었던 test영상.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작업은 쭉쭉 막힘없이 진행돼야 흥에 겨워 끝까지 갈 수 있는 추진력이 생기는 편인데 초반에서 막혀버리니 어쩐지 풀이 죽었다. 이런 마음으로 계속 작업을 이어가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이대로 손을 놓기에는 처음 가졌던 생각들이 낙엽처럼 져버리는 게 슬퍼서 놓을 수가 없었다. 작업자는 자신의 생각에, 캐릭터에, 이야기에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작업자가 그들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 모든 존재들은 흔적도 없이 우주에서 사라지고 만다.


애니메이션에 표현된 춤이나 기타 자료 영상을 찾아봤다. 그래도 계속 이와 관련된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까 괜찮은 동작들이 만들어졌다.

만든 동작중에 가장 화려한 애니메이팅이다.

어떨 때는 혼자서 춤을 춰보기도 했다. 수정하고, 다듬고, 첨가하고. 그렇게 새로 만든 동작을 기존의 영상에 이어 붙이거나 삭제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춤사위.

그려놓고 보니 캐릭터들이 너무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라, 후에 함께 춤추는 동작을 추가했다. 역시 춤은 혼자보다는 '함께' 추는 게 맛이지!

함께 춤추자.


(3) 배경

작업 일정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은 이유는 화려한 애니메이팅과 배교해 비교적 배경은 단순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라고(혼자 생각하곤 한다.)

몇 가지 배경 소스를 만든 후 배경 돌려쓰기(?)를 하는 것인데, 씬 별로 약간의 변주를 통해 지루한 느낌은 들지 않도록 조금씩 정비를 하는 것이다.

배경소스.jpg 주요 배경 소스

물론 필요에 따라 배경 이미지를 새로이 작업하기도 한다.

추가 배경'.jpg 마지막 장면에 쓰인 배경. 이 역시 기존의 배경 소스를 뒷 배경으로 썼다.
추가 배경2.jpg 극적인 시점의 레이아웃 때문에 새로 작업한 배경 이미지.


3. 완성


이렇게 전체 동작이 매끄럽게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면 러프하게 그렸던 그림들을 다시 깨끗하게 정리한다. 그 과정이 클린업 과정이다. 그 후 컬러를 입히고 그려놓은 배경을 합성한다. 편집 프로그램을 통해 약간의 색상 보정과정을 거치면 영상에 쓰일 최종 이미지들이 완성된다.

과정샷.jpg

필름이 완성되고 나면 음악이 제 1순위 걱정거리로 부상한다.

지난번 Lunar Calendar때와 같이 유튜브에 있는 무료 음원을 가져다 쓰는 게 어쩐지 누군가의 창작물을 함부로 쓰는 느낌이라 이번에는 이 영상을 위한 음원을 따로 제작하려 했었다. 그러나 음악을 만드는 분들과 몇 차례 시도 끝에 이 기획은 무산되었고 결국 이번에도 유튜브에 있는 음원을 영상에 사용하게 됐다. 탱고 느낌의 음원인데 영상과 꽤나 잘 어울린다. 다시 한번 이렇게 좋은 음원을 사용하게 해주신 먼 나라의 음악가분께 감사드린다.


그렇게 영상이 완성됐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네이버에서 열리는 웹 애니메이션 챌린지에 영상을 응모했다.

공모전이라는 것은 수상의 유무를 떠나서 작업자에게는 좋은 자극제이자 동기가 된다. 이런 기회가 많아져서 작업자들이 더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길 기원한다.

http://tvcast.naver.com/v/908746


만들까 어쩔까 고민했던 순간들이 골목마다 있었지만 역시 만들어놓고 보니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영상을 마무리하면서 5월이 끝났다. 개인적으로 대학원을 준비하고, 프로젝트 지원 사업을 신청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꽤나 부지런한 한 달을 보냈다. 긴 프로젝트를 하는 사이사이에 이렇게 환기가 되는 짧은 작업을 하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 어젯밤에는 잠을 청하며 다음엔 또 뭘 만들어볼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하고 그를 만들어 낼 수 있어 즐겁다. 다음 작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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