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프로젝트의시작

프랑스에서 온 한통의 메일

by BAEK Miyoung

2015년 12월 겨울. 오래 전의 일이다.


2015년 그해에는 처음으로 대학 강의를 시작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의 후배들에게 내 애니메이션 작업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일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그리 훌륭한 선생은 아니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긴장으로 가득 찼고 늘 머릿속 단어들은 버퍼링이 일어난 듯 부딪혔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몸에 열이 올라 한 동안은 누워서 열을 식혀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새로운 일의 여파로 2015년 한 해동안 꾸준히 진행했던 단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는 없었다.


연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작곡 및 공연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한 뮤지션 팀이라 했다. 그들은 최근 자신들이 작곡한 곡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들의 주된 일은 음악 공연인데, 무대에 함께 올릴 영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온라인으로 <고래> 애니메이션을 발견하게 됐고, 그 즉시 <고래>를 만든 아티스트에게 협업 제안 메일을 보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제안이 정말 택도 없다 생각했다.

우선 애니메이션이 순식간에 만들어지지도 않기에 그들이 그 시간을 가늠은 하는지, 기다려는 줄지, 그 시간만큼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었다. 이런 부정적인 태도는 그간 몇 차례의 작업 문의, 요청, 거절, 중단이라는 몇 차례의 선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작업 시간과 그에 따른 비용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들의 요청에 대한 내 대답은 당연히 No였지만 예의상 답장을 써 보냈다. 어찌 됐건 내 작업이 마음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지구 건너편에 있는 이에게 연락을 해온 이들이 아닌가. 까닭 없이 무례하게 굴 이유는 없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은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넌지시 물어봤다. 이건 정말 순수한 호기심으로 발동된 질문이었다.

답장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음악 파일 하나가 메일로 날아왔다. 지체 없이 음악을 틀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그들의 터무니없는 요청에 응하기로 한다. 음악이 정말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음악과 음향, 전반적인 사운드는 애니메이션 영상에 빠질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영상이 아무리 좋다한들, 좋은 소리와 음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영상의 몰입도는 한없이 낮아진다. 반대로 영상이 부분적으로 부족하다고 해도 거기에 꼭 들어맞는 사운드가 더해진다면, 종국엔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내 영상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기도 한다.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음악과 음향의 표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의 소리를 표현하거나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음악에 그대로 그려내야 하기 많기 때문에 그 중요성의 더욱 부각될 때가 많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때까지 완벽하게 마음에 드는 사운드 작업을 겪어보지 못했던 터였다. 사운드의 완성도는 좋았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부족함을 드러낼 때도 있었고, 기술적인 면은 괜찮았지만 음악의 퀄리티가 기대에 미치치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거나, 비용이 부족한 경우도 존재했다. 감독이 영상 전체를 좌우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음악을 만들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어느 지점에서 타협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그때까지 나에게 좋은 음악을 만난다는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 와중에 그들의 음악을 만났고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띄었다.


파리 뮤지션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담아 답장을 보냈다.


1. 음악이 마음에 든다. 음악에 걸맞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고 싶다.

2. 단, 이를 위해서는 1년 정도의 작업 시간이 필요하다.

3. 돈이 오가는 건 원치 않는다. 당신들의 음악을 '내 애니메이션'의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겠다. 당신도 내 애니메이션을 '공연 영상'으로 사용해라. 그렇게 순수하게 서로의 재능을 교환하는 방식이라면 함께 작업해도 좋을 것 같다.


답변이 왔다.

'OK. 좋아. 그렇게 하자'


솔직히 메일을 보내면서 1년의 작업 시간을 기다려줄지가 가장 큰 변수라 생각했다. 1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특히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들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의 양을 이해할 수 있을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어떠한 조건 없이 내 제안을 수락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1년이라는 시간 이외에 그들에게 큰 부담은 없었으리라. 무엇보다 '돈을 받지 않겠다'라는 내 제안에 그들도 꽤 놀란듯했다. 자신들이 큰돈은 없지만 영상 제작에 얼마의 돈이라도 보태겠다는 제안을 재차 해왔지만 거절했다. 돈이 오가게 되면 영상 작업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생길 것이다. 나는 영상만큼은 순수한 나만의 창작물로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의 개입을 받아야 한다면 나는 가차 없이 이 제안을 거절하거나, 어마어마하게 큰 비용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뮤지션들과 나 사이 어떠한 문서 하나 없이, '달, 어디 있니?' 프로젝트가 발동됐다. 메일 몇 번 만으로 완성된 프랑스 음악가-한국 애니메이션 작가의 즐거운 콜라보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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