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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Oct 08. 2023

발레수업

오늘 처음으로 발레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일회성이므로 언제 또 받을지는 미지수이다. 친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리듬체조 선수의 스튜디오에서 그녀와 함께 볼과 리본 체조를 가르치기도 하고, 본인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생뚱맞게도 일회성 발레 수업을 개최한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전직 국립발레단원이 가리친단다. 평소 발레에 호기심이 있었다. 온몸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있을테지만 우아하고 꽂꽂이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발레리나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다. 


사실 발레가 처음은 아니다. 사립 고등학교를 다녔다. 우리의 예체능 수업은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들과 다르게 다채로왔다. 기타와 가야금을 배워야했고, 한복을 입고 며칠간 집과 떨어져 지내며 여성이 갖추어야할(?) 예절 교육과 규방 손기술(노리게만들기 등)과 널뛰기, 전통 그네타기 등을 배워야했다. 그리고 까칠한 무용수업이 있었다.


무용선생님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우리는 실기 수업 중에 마치 무용수처럼 걸어야 했다. 고개를 들어 목을 하늘로 쭉 늘리고, 허리와 등을 쭉 펴서 곧은 자세를하고, 턱을 들어 시선을 1미터 앞에 두고 팔자로 사뿐사뿐 걸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도도하면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당시에는 했었다. 선생님은 평상시 걷는 자세도 특이했다. 어디나 무대인 것처럼 걸음걸이 자체가 그랬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발레리나로써의 생활을 꽤 오래한 탓이리라. 선생님의 종아리와 걷는 모습은 발레리나에 대한 나의 환상을 깨기에 충분했다. 너무 두껍고 뒤뚱거리는 듯한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였기때문이다.


수업시간에는 이제는 기억이 희미한 발레구령이 있었다. 발 동작을 하며 구령을 넣곤 했었다. A쌰페 B샤페… 그래..!, 대략 이런 용어였다. 아… 그러나 지옥같았던 무용시간..  


나는 대학시험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기타, 가야금, 무용 시간이 원망스러웠다. 잘 하지도 못했거니와 흥미도 없었다. 문제는 이 모든 과목에도 시험이라는 것이 있고, 나는 그 시험의 실기에 매우 취약했다는 점이다. 부담스러운 크기의 통기타를 칠때도, 거대한 가야금의 줄을 뜯을 때도 나는 열 손가락을 어디에 두어야될지 몰라 참으로 헤매었었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매우 안타까워했다. 나 또한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내가 매우 안타까웠다. 마치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이가 어느덧 작아진 옷의 단추를 끼기 힘들어 하듯, 나는 그 모든 상황이 내게 맞지 않게 여겨졌고 힘들었으니까. 무용 과목도 다를 게 없었다. 이론은 어떻게는 내가 통제할 수 있었다. 시험에 나오는 정보를 외우든 외우지 않든 두가지 중 하나를 하면 되었으까. 물론 나는 벼락치기로 외우기를 선호하기 했지만… 그러나 실기는 달랐다. 마음과 달리 이리저리 따로 국밥같은 팔과 다리는 A쌰페 B샤페의 구령으로도 별 소용이 없었다. 더한 점은 실기 시험이 팀과제였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는 실기는 언제나 나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혼자하면 나만 못하니 상관이 없지만, 팀과제는 나로인해 팀이 영향을 받을 수 있었기에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선생님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다행히 그녀는 팀과제여도 점수를 위해서 개개인의 몸동작을 보긴 했었다. 아무튼… 요지는 오늘 있었던 발레 수업은 성인이 되어 처음 체험해보았다는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와 달랐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시험도 없었다. A쌰페 B샤페 같은 알지 못하는 구령대신 알롱제, 텅두, 드미 플리에, 그렁 플리에, 샤쎄같은 이제는 너무도 잘 아는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수업을 해준 선생님의 프랑스어 용어를 듣자, 고등학교 때 무용 선생님의 구령이 귓가에 맴돌았다. A쌰페,B샤페..

이제 와 보니 “A쌰페”는 “에샤페échapé”라는 프랑스어 단어였다. 그뒤로 B샤페는 그저 구령을 넣기위해 만들어진 단어일 뿐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성인이 되어 프랑스어를 하며 생활할지 상상도 하지 않았는데…, 이럴때보면 우리 인생은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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