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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11. 2023

그림

[100-2] 백일백장 12기


“제가 스님을 잘 모르지만 그림을 보면 어떤 분이신지가 보여요. 그림 속에 스님의 감성과 본 모습이 그대로 보여져요.”

스님은 두 번째 뵙는 듯하다. 한 번은 클래스에서 뵈었었고, 그리고 오늘 인사동에서 두 번째로 뵙는 듯하다. 멀리 문경에서 수업을 들으러 올라 오신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학교에 나가 그림을 배우지 않는다. 특별히 민화를 배우기 위해 두 학기를 다녔었다. 나의 정체성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적인 무언가를 배워 두는게 좋다는 생각이 있긴 했다. 그러는 찰라 나의 그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S대 민화클래스. 그곳에서 민화를 접하며 사람들의 영혼도 접한 듯 하다. 생각 외로 그림을 그리는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았다. 역시는 인간은 결국 창조와 표현의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다른 사람의 그림을 보다보면 패턴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 장의 그림을 보아도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그림을 그린 사람의 마음, 그 안에 살아있는 영혼까지 느낄 때가 있다. 그림이 여러개이면 더더욱 그 화가가 잘 보인다. 오늘 두 번째로 만난 스님의 그림에서 보았다.


먼곳에서 마음먹고 인사동까지 올라오신 스님은 그동안 작업한 그림을 잔뜩 가지고 오셨다. 8월달에 개인전이 있다고 하신다. 스님이 그리신 그림이라... 얼마나 젠스럽고, 고귀하고, 심도있고, 점잖아보이는 그림일까. 스님은 그림을 한묶음, 두묶음 테이블 위에 꺼내놓으시며 하나씩 펼쳐 보였다. 그런데 그림들이 하나같이 나의 예상을 빛나갔다. 그림은 점잖지고, 젠스럽지도, 심도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연배도 있으신데 어쩌면 그리 젊은 요즘 속세인들이 그린 그림 같을까. 속세인이라는 내 말은 그냥 일반인이라는 말이다. 따로 산속에 거처를 두고 사는 사람말고 아래로 내려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그런 속세인을 말이다.


색감과 형태, 그리고 무언가가 순수한 젊은 마음을 가진 여성이 그린 그림들이 수두룩했다. 그때 알았다. 스님은 어떤 사람인지.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나의 선생님의 그림은 그런 느낌이고, 민화 교수님의 그림은 매번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나의 그림도 그런 느낌이 보일 것이다. 나는 색을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 특별히 어려서부터 그림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형태를 정교하게 그리는 것보다는 색으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당연히 이런 저런 형태를 그리기도 한다. 사물의 형태를 그릴때는 사진이나 있는 그대로를 보고 형태를 그대로 옮기는 걸 하는데, 그대로 옮기는 것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르다. 나는 나의 스타일대로, 그는 그의 스타일대로, 모두 어쩌면 그리 다른지 참 신기할 따름이다. 매번 사용하는 색과 색감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이는데, 처음 그림을 완성했을 때 나는 그 안에 있는 낯선 ‘나’의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기억이 있다. 참 급하고, 참 내적 갈등이 많고, 참 시커먼 내 안의 나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특별히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결심없이 내가 원하는 밑그림과 그 위에 원하는 색을 칠했을 뿐인데, 나는 나아닌 나를 만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본 나는 침착하고 안정적이었고 밝고 여성스러웠다. 나의 생각처럼 그렇게 우왁스럽거나, 신경질적이거나, 내적 갈등이 심해 까맣게 타거나 하는 모습은 없었다.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을 했따. 그러나 그 이후로 그린 그림들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순수하고 밝고 진정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내 그림을 본 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해 주셨다. 물론 다른 모습도 있다. 밝지만 뭔가 갈등이 있는 모습, 밝은 그림이나 뭔가 이야깃거리가 있는. 내가 표현하고자하는 내적 세계의 그림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 교수님의 말씀처럼 나는 어쩌면 양파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맞을 수도 있다. 그 모습이 어찌됐든 내가 다른 이들의 그림을 보고 느끼는 건 아무리 많은 작품을 해도 그를 규정하는 어떤 패턴이 있다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유전적으로 타고난 DNA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선택하는 색, 한 사람이 그리는 형태,

선 하나를 그을 뿐인데 그 사람이 보인다.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보다. 행동 하나에 태초부터 이어진 복잡한 유전자가 한 번에 표현되는 것. 그림을 그리며 타고난 유전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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