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어디에요?”
“아, 네, 저 지금 산 속이에요. 이제 마을로 내려가려구요.”
한국에 돌아와 처음 만난 사이다. ‘언니‘라는 호칭이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에게 ’언니’는 가족에게나 쓸 수 있는 호칭이다. 나이가 한 살이 어리다고 나를 깍듯이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잊고 있었던 한국의 문화가 생각났다.
과거 한국 파트너와 일을 했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었다. 그때도 호칭과 상사를 대하는 모습에서 한국의 특별한 문화를 느끼곤 했었다.
“김부장! 이 쪽으로 와 보세요.” ‘김부장’, 김부장을 열심히 찾는 파트너사 사장님 앞에서 나또한 김부장을 열심히 찾았다.
‘도대체 김부장은 어디에 있는 거지? 왜 대답을 안할까?’ 그런데 그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아졌을 때, 그 김부장이 바로 나라를 걸 알고는 스스로 적잖이 놀랐었다. 이름이 빠진 호칭은 한 동안 자주 그렇게 공중을 배회했다.
익숙지 않은 상황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장님이 나타나시면 홍해의 거대한 물줄기가 갈라지 듯 직원들은 소리없이 스르르 양갈래로 갈라졌다. 모두가 사라지고 중앙에 혼자 남은 나는 어리둥절해서 사장님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조잘조잘 사장님과 잘도 담소를 나누는 내 모습에서 아마도 함께 있었던 보디가드들은 참 의외라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다. 또는 파트너사의 입장이니 그렇게 별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런 일들은 이 후에도 여러 곳에서 자주 등장했다.
‘언니‘라는 호칭에 답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마도 나는 한국 생활에 다시 적응하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사람들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알았다.
“언니, 어디에요?”
“아, 네, 저 지금 산 속이에요. 이제 마을로 내려가려구요.”
“언니, 언니랑 대화하면 어디 외국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 같아요. 마을이라니요 하하하. 서울 한복판에서 마을이라니, 어디 이탈리아 산 속에서 내려오는 느낌이랄까? 하하하!”
그녀의 말이 맞다. 내가 말하는 방식은 좀 달라져 있었다. 같은 한국어지만 상대가 언뜻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발음이 정확지 않거나 표현이 달라서였다. “사리들었다”는 표현을 “넘긴 물이 다른 관으로 들어갔어요.”라고 하거
나에게 남산으로 들어가는 일은 미지의 깊은 산 속을 탐험하는 행위이고, 그 곳을 벗어나는 일은 저 아래 인간 세상인 마을로 돌아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때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