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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Dec 12. 2023

남산 도서관 여자

“지금부터 말하려는 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가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가끔 그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남자로 태어났다면 그와 비슷한 감성을 지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의 책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나의 기억 속 사건을 재생하기에 매우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없었다. 첫 문장을 읽으니 한 사건이 떠올랐다.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기억해낸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남산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시기적으로 일년의 반이 지난 어느 가을날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한창이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중얼 중얼 중얼.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뚜겅이 막힌 플라스틱 병의 공기처럼 뭉얼뭉얼 알 수없었던 소리가 점점더 명료해졌다. 

“왜 그래! 개씨팔! 미친 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살 것 같아!”

나만 들은 걸까?

눈을 동그랗게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 남자가 보였다. 도서관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남자는 마스크를 반쯤 내린 채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소리는 너무 커서 누구에게나 들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 마치 아무일도 없는 듯, 아무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가 잠시 그러다 말겠거니 여기고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너 죽고 싶어!, 미친! @#$%^&*”

동일의 남자가 여전히 주절주절 욕을 섞어가며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이 상황을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다 나는 저벅저벅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아...! 진심으로 내 팔을 당겨 나의 움직임을 막고 싶다.


나는 어느새 빛의 속도로 그의 앞에 서더니 그 가벼운 입을 열어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 조용히 좀 하세요! 안그러시면 안내에 말할거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깍듯이 대답했다. 의외였다. 


조용해진 남자를 뒤로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안자 다시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기를 잠시, 남자가 어느덧 빛의 속도로 나의 옆에 서더니 큰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다.

“아가씨! 내가 뭘봐서 아저씨야! 내가 아가씨를 아줌마라 하면 기분 좋아? 아가씨, 그리고 그 자판소리 너무 커! 방해 돼!”

‘아니, 이건 무슨 @#$%^&*!’

나는 말문이 막혀 그를 쳐다보고는 분노에 휩싸인 그를 뒤로하고 반사적으로 노트북을 탁하고 닫고 뒤돌아 걸었다. 남자는 대화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때 문을 향해 걸어나는 나를 보고 그가 또 한번 소리쳤다. 

“나를 뭘 보고 아저씨래?”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내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뒤통수에 꽃힌 그의 시선에 머리가 쭈삣거렸다. 안내로 향하며 SOS를 속으로 외쳐댔다. 

‘제발 저 분(저 XX놈)을 진정시켜 주세요. 남산 도서관 직원님!’

안내에 도착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직원은 남자에게 몇 번이나 경고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는 도서관에서 이미 잘 알려진 사람이었다. 소란을 피운 일이 처음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직원의 말에 의하면 주의를 주면 또 잘 듣고 조용해진다고 한다. 

이번에도 직원이 다가가자 말을 듣기도 전부터 순한 어린양으로 변해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불편해져서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그때다. 옆에 있던 한 남성분이 검지손가락을 펴서 머리 옆에 대고는 뱅글뱅글 돌리며 말을 건낸다.

“아가씨, 저런 사람은 그냥 모른 척해. 신경쓰지 않는 게 상책이야.” 

그리고는 세상좋은 웃음을 보이고 책으로 다시 돌아갔다. 나는 잠깐이지만 선한 얼굴을 한 그의 모습을 보며 ‘아! 인생은 저렇게 사는 건가?’ 하는 자각이 들었다. 확실히 평온해보이는 그와 싸움닭 형상을 한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그는 평화로웠고 나는 불쾌했다. 그리고 그때 불편한 순간을 참지 못하고 불처럼 일어나는 내가 보였다. 

모두에게 불편할 또는 그렇지 않을 그 상황을 지레짐작하고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으니 나라도 나서야 한다’는 쓸데없는 정의감에 사로잡힌 나. 어릴적부터 때되면 반복되는 불같은 상황들. 사실 나는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나! 나는 꼭 정의롭지 않아도 된다. 조금은 비겁해도되고 조금은 관여하지 말고 살아도 된다. 때로는 씁쓸하지만 평화로울 순 있다. 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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