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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13. 2023

이태원 친구들


안녕! 봉주르Bonjour! 알로hallo! 셀람Selam! 하이Hi!


4개월 단기간 동안 지낼 곳을 찾으러 이태원 일대를 검색했다. 그레이그 리스트 craigslist에 올라온 몇 개의 광고를 보고 집을 방문하고 계약했다. 그곳에 J와 S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배경으로 서로 다른 곳에서 와서 해방촌에서 만났다. 


독일어로, 프랑스어로, 터키어로, 각자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영어로 또 가끔은 한국어로 함께 이야기 하게 되었다. 각자 매일의 일상을 소화하고 저녁이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한다. 혼자만의 귀중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나는 최근에 들어간 G센터에서 기후기술에 관한 생소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S는 석사 논문 준비를 위해 한국인과 했던 인터뷰 이야기를, 그리고 J는…, J는, 글쎄…, 그녀만의 하루 일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일에서 온 J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늘 평온해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J, 너 계획이 뭐야?”

“무슨 계획?”

“네가 말했잖아. 2-3 개월동안 일단 있어보겠다고. 그 뒤로 무얼 할지 계획이 있어?”

“아니, 난 2개월 뒤의 계획은 절대 세우지 않아?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으로 봐선 계획을 세워봤자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

“응, 그래도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 같은 뭔가 생각이 있지 않니?”

“아니 없어, 난 지금은 뉴트리션이 되고 싶고, 학교로 돌아가 볼 생각이 있지만, 거기까지야. 더 이상 생각하지 않지.”

“뭐? 너 불안하지 않니?”

“아니, 난 이제 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어. 미리 걱정하는 것도 다 쓸데없는 일이란 걸 알게 됐거든.”


J는 정말이지 평온해 보인다. 모든 걸 통달한 사람같다. J가 한국에 온 이유는 서울에 있는 어떤 환경단체와의 인연때문이었다고 했다. 결국 일을 같이 하지 않게 되었는데, 그 또한 큰 문제가 되어보이진 않았다. 그 이유가 어찌됐든 그녀는 여행이 좋고, 한국이 좋다고 한다. 한국인들만의 따듯한 정, 문화,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J는 하루 일과를 매우 알차게 보냈다. 아침 8시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식사를 먹고, 집을 나가 카페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었다. 저녁 즈음에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독일의 가족과 통화를 하고, 영화를 보거나 기타 여가를 즐기는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비건 Vegan이고 음식도 직접 요리해서 건강하게 먹었다. 그녀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듯했다. 대단해 보였다. 


S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쩌면 J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S의 어머니는 어느 날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다. 그리고 의시에게서 뇌종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종양은 여러 개였다. 수술하면 살 확률이 30퍼센트?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 확률이 또 몇 퍼센트…. 생사의 기로에서 어머니는 수술을 포기하고 그냥 그대로 지내신다는 거다. 나는 너무 놀랍고 안타까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담담하고 오히려 명랑해 보였다. 엄마와 매일 통화할 때도 늘 밝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엄마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없었다. S도 S의 어머니도 그저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 거창한 계획보다 하루, 매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게 목표라고 한다. 


나는 계획이 있었다. 잠깐 한국에 들어와 숨을 돌리고, 프랑스로 가서 꽃을 배우고 그 후로 무엇을 하고 또 무엇을 하고…. 계획은 실행되지 못한 채 4년이 흘렀다. J와 S는 어찌어찌하여 한국을 떠났다. 2020년에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 19의 영향도 있었다. 당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태원에 산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 우리는 불행한 걸까? 그렇지 않다. J는 그 사이 베를린에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아이가 생겨 몇 개월 전 예쁜 여자아이 출산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녀는 그 언제보다 행복하다고 한다. 학교로 돌아가지도 뉴트리션이 되고자 했던 꿈도 잠시 멀어졌지만 지금이 행복하단다. S도 본국으로 돌아가 고향에서 이스탄불로 갔다. 어느 눈내리는 날 영상 통화를 하며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한다. 이스탄불에 눈이 오다니 신기하다며. 그날 그녀의 미소는 유독 환하고 예뻤다. 결혼을 하지 않고, 박사 공부를 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해왔다. 그녀의 연구실에는 우리 셋이 함께 찍은 익숙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인연들을 이곳 이태원에서 만났다. 회상하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친구들. 


오늘은 오랜만에 메세지를 띄워볼까?

J! S! 잘 지내고 있니?

그곳 날씨는 어때? 

한국은 지금 빗방울 소리 넘치는 장마철이야, 이태원에서 우리 함께 살 때 기억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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