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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14. 2023

숨을 쉬다


아침 일찍 반포대교를 건너에 하는데 가능할까? 다행히 밤새 내리던 비는 잦아들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쓰러진 전봇대도 부러진 나무도 보이진 않는다. 이웃집 화단에 활짝 핀 원추리 꽃도 여전히 환한 주황색 얼굴을 청명히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게 정상이다. 


이렇게 밤새도록 장대비가 내리면 이 도시 어딘가에는 물난리가 나고, 도로가 여기저기서 통제된다. 아니나 다를까 잠수교가 통제되었다. 한강을 건너는 일이 때아닌 챌린지가 되었다. 일단은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갔다. 다행히 버스가 있는지 이미 몇몇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운좋게 도착한 버스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물이 불어나 나무들이 둥둥 떠있는 형국에, 플로팅 아일랜드 건물은 말 그대로 한강 물위에 덩그러니 떠있는 듯 건물까지 다다르는 나무 덱이 물에 잠겨있었다. 오늘 저녁 바스티유 데이 파티는 왠지 취소될 듯 하다.


한강을 건너 약속한 장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나마 내리던 비는 거의 그쳤고 어쩌면 날씨가 좋아질 거라는 생각도 잠시, 또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제와 같은 장대비가 아니라 슬며시 내려앉는 보슬비같다. 축축하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정 내내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으련만..


기후가 바뀐 듯하다. 점점 동남아시아의 어느 나라에 와 있는 듯 후덥지근하고 답답한 날들이 지속되니 기분이 덩달이 답답해 지기도 한다. 별 의지가없는 하루들이 지속됨이 별로 상쾌하진 않다. 사람들은 각자의 비상쾌함을 지니고도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명이 다해가는 형광등이 깜빡거리듯 명확하지 않아서 지속을 하는 일상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듯 하다. 모든 것이 흑과백처럼 뚜렷한 삶이 정답이 아님을 알게되었으니까.


내가 있는 남산 밑 경리단은 지대가 놓아 비피해가 덜할 수 있는데 정작 산 속은 또 다르다. 작년 이맘때 같은 장마철이었다. 사실 비가 오면 남산은 한 뼘 더 자라는 듯 초록나무는 키가 더 자라고 짙은 흙냄새를 품은 듯 풀은 더 성숙해진다. 장마를 겪으며 숲은 한번씩 성장통을 겪는 듯하다. 장마비가 한 차례 지나가면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생기기도 하고, 뿌리가 뽑힌 나무도 통으로 밑둥이 잘린 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장마는 이렇게 한번씩 필요한 단도리를 하는 건지 숲의 모양을 바꾸고는 한다. 이럴 땐 아침 일찍 노래하던 종달새도 먹이를 찾아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청솔모도 보이지 않는댜. 고요한 숲의 숨소리만 들린 뿐이다. 숨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날도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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