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입니다 ‘에서 ’~이다‘라고 바뀌는 건 감정의 변화 때문이다. 어찌 보면 무감정의 확신인듯한 ~이다는 때로는 목마름의 표현일 수 있다. 조심스러운 배려보다 당당한 내뱉음일 수도 있다. 부드럽게 건반 위를 오가던 손가락이 스토카토를 연주하듯 뻣뻣해지는 순간일 수 있다. 그런 연주가 있듯 그런 글도 있다. 미안하지만 읽는 이보다 쓰는 이가 중요한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에게 공개하는 이유는, 이기심과 무심함 때문이다.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읽는 이는 아무 죄가 없다. 굳이 내가 쓴 글로 다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평서문이야말로 때로는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른다.
그런 마음에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먼저 사과를 드려야겠다. 평서문에 감정을 실어 죄송합니다. 마음이 그럴 때가 있답니다. 그렇다고 제가 쓴 모든 평서문에서 마음을 다치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그저 멀리 넘실거리는 지나가는 파도라 생각하시고 넘실넘실 지나가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글을 쓰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이 특이해서 대답 전에 잠깐 멈칫했다.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일 수 있다. 혹은 나는 아직도 글을 쓰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받을 사람인가라고 잠시 생각했어야 했을 수도. 매일 글쩍이고 있지만 글을 쓰는 행위일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그렇다면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이 있어야 하고, 글을 계속 쓴다는 증명이 있어야 하니까.
글을 5년 전부터 썼다고 했다. 아! 정확히 4년 전부터. 그렇게 년수를 적고 나니 그전에 글을 쓰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글을 굳이 쓰지 않은 이유가 있을까? 어쩌다 학교 과제로 쓰는 글 말고, 나에게라도 글을 쓴 적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
고등학교 때 일기 쓰기를 끝으로 나는 나에게 글을 써본 적이 없었다. 한동안 그랬다. 이제 누군가 “계속 글을 쓰세요?”라고 물으면 “네!”라고 바로 답하겠다. 나에게 글을 쓰니까. 나는 매일 나에게 글을 쓴다.
글을 쓰다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좀 더 깊이 있는 글, 통찰력 있는 글이 좋은데, 그 글이 나로부터 나왔으면 좋겠는데 하는 종류의 것이다. 평범한 단어의 나열이라도 단어의 선택과 배치에 따라 깊이가 다르다. 조각조각 떠다니는 모음과 자음의 모양을 맞추려 머리를 굴려본다.
그러나 말거나, 손가락은 별관심이 없는 듯 연신 자판의 무수한 기호를 두드린다. 뭔가 고찰할 시간도 없이 단어가 만들어지고 화면이 채워진다. 기호를 읽으며 오늘 내 생각의 범위가 여기까지인가? 내 삶의 깊이가 여기까지 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한다. 아무튼 글쓰기가 무글보다는 낫겠지만, 착잡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 마음도 어쩔 수 없다. 목이 말라서 평서문으로 쓰게 되었다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