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난 엄마의 얼굴이 유난히 노랗습니다. 찬찬히 보니,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그렇습니다. 노랗다 못해 투명해서 내장이 보일 정도라 착각할 정도입니다. 엄마는 입이 까다롭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랬습니다.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다릅니다. 어릴 적 친구집에서 본 빨갛고 또는 브라운의 걸쭉한 찌개류는 우리 집에 없습니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된장이 없습니다. 엄마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절대로 드시지 않습니다. 남은 반찬을 넣어 만들었다 생각된다고 합니다. 국밥이나 순대로 싫어합니다. 구릿한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시뻘건 국물의 짬뽕도, 기름 가득한 자장면도 안 드십니다. 기름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흰 생선, 흰밥, 김치, 집고추장을 좋아합니다. 어릴 적 내가 먹은 집밥은 그랬습니다. 가려서 내놓은 반찬은 종류가 다양하지 않습니다. 가난도 한몫했습니다.
엄마의 까다로운 입맛은 연세가 들면서 더 심해집니다. 고기도 누린대가 난다면 먹지 않습니다. 단백질 보충해야 한다고 자식들이 말하면 혼자 먹는 게 싫다며 드시지 않습니다. 병원에 허리수술하고 무릎 관절 수술을 할 때마다 수혈을 합니다. 혈액이 부족한 겁니다. 당연합니다. 드시는 거라곤, 입맛에 맞는 것만 드시고, 그러니 영향 불균형에 빈혈까지 생기는 것이죠.
엄마의 노란 얼굴은 마치 고무 같습니다. 어릴 적 병원의 대형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발과 색이 같습니다. 키가 크셨는지 그분은 병원의 하얀 시트로 몸이 다 가려지지 않았더랬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발이 큰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수술대 같았던 곳에 머리부터 가려져 얼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노란 엄마의 얼굴을 보니 그때 그 장면이 생각납니다.
엄마에게 제발 음식을 골고루 드시라 해도 소용없습니다. 엄마는 평생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가려하는 듯합니다. 자식들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 엄마를 보며, 내 노년기를 미리 떠올려봅니다. 아니 지금의 나를 바라봅니다. 나는 과연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얼마나 겸손한 태도로 주위를 집중하고 있는가. 나를 먼저 생각하자고 결심했었습니다.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왠지 안타깝습니다. 꼰대는 되지 말아야겠고, 나는 지켜야겠고. 그 사이 어딘가가 필요한 것이겠죠.
예상대로 노란 엄마의 얼굴은 정상이 아닙니다. 혈압약을 타러 갔더니, 병원에서 무슨 이유로 혈액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결과는 며칠 걸린다 합니다. 오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서 전화가 옵니다. 당장 입원해야 한다 합니다. 수혈이 필요하답니다. 혈액이 현저히 부족한 몸이었던 것이에요.
어제부터 엄마는 수혈을 받고 있습니다. 며칠이 필요할 만큼 많은 양의 피를 받아야 한답니다. 엄마가 걱정되기도 안타깝기도 합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기로 미리 마음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