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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5] 셀프 코칭 74. 슬픈 마음이 들 때

by 벨플러 Miyoung

슬픈 마음이 들 때, 늘 끌어안는 책이 있습니다. 루이즈 헤이의 <치유>, 그리고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입니다. 좌절감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구출해 준 은인 같은 책입니다. 공부하고 묵상해야 하는 성경책이나, 경전보다 더 직관적이고 빨랐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이 책들이 저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개념일 수도 있겠습니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뿌리 같은 존재이죠. 쉽게 손이 가는 책이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나 중요한 역할을 한답니다.


슬픈 마음이 들 때, 몰입하기를 좋아합니다. 대상과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방법이 있고, 산책을 하며 스르르 슬픔을 흘려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의외로 몰입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가 나에게는 몰입입니다. 현자가 그랬습니다. 슬픔은 감정이고, 감정은 사실이 아니다. 나를 속이는 사실이 아닌 감정에 속지 말라고요. 그런 감정에 속지 않고 싶지만, 그 감정을 외면하기는 감정에게 미안해지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가 그랬습니다.


충분히 느껴주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얼굴을 돌려 버리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죠. 직면하고 나를 둘러싸는 감정에 휩싸이기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그저 조금 더 가까이에서 바라보려는 것이죠. 이렇게 글을 쓰며 그 아이를 들여다보기를 하는 것도 괜찮았지만, 어제처럼 코칭을 받는 방법도 좋았습니다. 오랜만이었죠. 제가 다른 이를 대상으로 코칭을 하지 않고 코칭을 받는 경우가요. 코칭은 다른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내 현재 상태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한 번의 코칭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제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건, 그동안 기저에 깔려있던 마음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 생각됩니다. 몸이 아프니 감정이 올라온다고 생각이 되기도 합니다. 5년 전부터 심각한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더랬습니다. 손이 퉁퉁 붓고, 온몸이 가렵고, 숨쉬기가 힘들었었죠. 갑자기 일어나 신체 반응에 참 놀랐었죠. 발을 동동 거리며 상하이의 응급실로 달려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 외로웠죠. 혼자 병원으로 가는 디디(중국의 우버) 안이었습니다. 놀란 눈으로 내내 상하이 어느 지역의 낯선 밤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혼자가 아니었는데, 혼자였죠. 나는 그때 많이 슬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눈물은 흘리면 안 되는 것이었죠. 철저히 슬프고, 외로운 감정을 차단하고 살았던 시간이 오래였습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던 시점이 그 뒤로 1년 뒤였을까... 그랬습니다.


눈물은 위약함의 증명이 아니었습니다. 지질함의 표출도 아니었습니다. 눈물은 따듯한 위로였습니다. 그동안 몸 안에 가두어 놓았던 소중한 나의 느낌을 알아주고 어루만져주는 위대한 일이었습니다. 눈물은 정화의 물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렇게 신성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위약하지도 지질하지 않은 눈물의 원인은 슬픔입니다. 환희와 감사의 눈물도 있지만 제가 여기서 말하려는 건 그런 종류의 눈물이 아닙니다. 슬픈 감정이 허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감정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싶어 위에서 언급한 책을 끌어안습니다. 밤길을 걷습니다. 코치와 대화를 나눕니다. 코칭을 배우기를 너무 잘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저를 코칭해 주시는 분께 나의 슬픔에게 안타깝고 미안하다 했습니다. 마음이 덜 아파져서 감사하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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