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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Diaspora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하여

by 벨플러 Miyoung

최근 다아스포라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디아스포라는 본국을 떠나 사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해외로 유학을 갔다거나, 취직을 해서 직장을 다니는 경우, 재외국민도 해당됩니다. 해외에서 살아 본 사람들은 국내에서 하지 못한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거주하는 나라가 백인 위주의 경우에는 더더욱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죠.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캐나다라는 이주해 온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국가입니다. 원주민이 따로 있었으나 지금은 소수로 변해버렸죠.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위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캐나다는 저 같은 동양인도 많이 있으나, 비율로 보자면 7:2 정도가 되니 여전히 그렇다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1은 다른 인종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백인이 월등히 많은 국가이고, 백인 위주의 사회입니다. 당연합니다. 많은 동양인들이 캐나다와 같은 국가에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낍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죠. 저 또한 그랬습니다. 그렇더라도 지내는 곳의 문화에 자연스레 동화되기도 합니다. 동양인이 백인문화를 가지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나 같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겉은 노랗게 생겼는데 알고 보니 속은 하얗다는 의미죠. 백인 문화를 가진 동양인을 두고 주로 하는 말입니다.


저도 의도치 않게 그런 저 자신이 바나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캐나다와 프랑스에서의 오래된 외국생활이 가져 온 결과입니다. 한국어를 쓰지 않는 시간이 오래되며 나도 모르게 문화도 바뀌어 있는 것이지요. 저는 어느 순간부터 매우 혼란스러웠죠. 나를 정의하기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주위에 한국인이 없으니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백인만 있으니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입니다. 어느 순간 한국어를 잊어버려 말더듬이 한국어 사용자가 된 나 자신에게 물음표가 떠오릅니다. ‘나는 누구일까?’


저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내적 Struggle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실제로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처럼 혼란스러웠던 정체성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극복했다 하였습니다. 이 말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 마음속에 담았을지를 알게 해 줍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잠깐 이야기를 나누어도 알게 됩니다.


최근에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가 있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베트남인 부모 밑에 나고 자라고 어메리칸 학교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 후 남미에서 생활하기도 했지요. 가정에는 베트남 문화를, 자라면서 독일 문화를, 학교에선 미국 시스템을,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사회에선 남미 문화도 경험합니다. 그는 진정 글로벌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그가 행복할 것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도 정체성 혼란이 심했습니다. 저와 같이요. 특히 성인이 되기까지 생활했던 독일은 동양인 외모를 지닌 그에게는 폐쇄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대도시를 벗어나면 소외감을 쉬이 느낀다고 합니다.


인종차별은 쉬쉬하는 이슈이지만 어디든 존재한다고 봅니다. 나와 다르게 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을 동물적인 본능으로 경계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간이므로 고차원적 마인드로 포용하고자 할 뿐입니다.


정체성 혼란을 극복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저의 경우와 일맥상통합니다. 제가 그랬듯 그 또한 자신의 모든 다양성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아파했을 겁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저보다 더 어려서 깨달았습니다. 정체성이라는 건, 자신이 어떤 존재로 있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 선택에서 포용이 필요한 것이고요.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키Key라 생각됩니다. 과거, 나의 모든 면을 포용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새롭고, 또는 새롭지도 않을 안전한 나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이지요.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그도 그런 듯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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