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서울사람은 아닙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강릉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20대에 공기 좋고 물 좋은 캐나다로 건너갔습니다. 유학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찾았던 곳입니다. 30대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을만큼 힘들었던 이 나라에서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었습니다. 행복하게 살기, 불행했던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덮기. 희망을 꿈꿨습니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기회 같았습니다. 한 줌으로 사라질 것 같은 그 희망이라는 단어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희망을 경험하고야 말겠다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구겨져 길가에 버려진 종이조각 같은 희망이라도 좋았습니다. 내가 줍고 반듯이 잘 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은 낯선 곳이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살 곳을 찾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태평양 건너에서 한국을 탐험했습니다. 한국의 지도, 수도권, 서울의 곳곳을 줌인하며 들여다보았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는 그럴싸해 보이나 알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서울 사는 언니에게 물어보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지금처럼 국가 간 소통이 빠릿빠릿하지는 않았습니다.
캐나다에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가지고 있던 짐은 Garage 세일로, 현지 친구들 집으로, 한국과 프랑스 가족으로 각각 제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나의 8년 이삿짐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정리되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이 나라. 이 도시를 떠난다는 건 생각보다 슬픈 일이었습니다. 마지막 물건을 받아 든 친구 앞에서 뜻하지 않은 울음이 뜨거운 입김과 함께 훅하고 터져 나왔습니다.
친구는 뇌심리학자입니다. 매우 하이퍼 한 에너지의 소유자입니다. 자유로운 영혼이며, 누구보다 큰소리로 유쾌하게 웃습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는 유독 신랄하게 웨이터와 실랑이를 합니다. 삶이 자주 심각할 것이라곤 없는, 무심한듯한 그 친구 앞에서 갑자기 오열을 했습니다. 위로를 받으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짐을 모두 정리하고 남은 마지막 물건을 건네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은 그렇게 서러운 것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속마음에 스스로도 놀라 흠칫했지만 늦었습니다. 이미 붉어진 얼굴과 두 손으로 감싼 눈 사이로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텅 빈 집에서 웅웅 거리며 메아리가 울립니다. 울음은 광이 나서 반짝이는 마호가니 나무 바닥에 떨어지더니 사선으로 반사되어 흰색 벽에 부딪혀 공간으로 퍼지며 집 내부 전체를 울립니다. 현관에서 계단을 거쳐 거실과 부엌을 지나 안방과 건넌방의 창문 커튼을 어루만집니다. 우리는 그날 저녁, 그렇게 어깨를 들썩이는 사람과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 한참을 입체로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친구에게 건네준 물건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나 봅니다.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작은 상자였을까? 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알 수 없습니다. 물리적인 물건은 사라지고, 갈색 어두운 슬픔만 기억에 남습니다.
서울은 꽤 넓고 낯설었습니다. 어딜 가나 새 모습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서울사람이 아닙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는 곳이라곤 서울 사는 언니집 근처와 한 때 들렀던 홍대와 신촌, 이태원, 중앙대 정도입니다. 한두 번 가보았을 뿐입니다. 중앙대는 사진을 배우러 잠깐 다녔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때가 시초였던 것 같습니다. 숨 쉴 공간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요. 아니 어쩌면 그 이전, 훨씬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습니다. 차를 몰려 자유로워졌고, 혼자 책을 읽고, 영화관을 가며 숨을 쉬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찾은 숨 쉴 공간은 이태원 일대였습니다. 삼각지역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어 편리성까지 갖춘 오피스텔을 찾았습니다. 한국 드라마에서만 보던 모던한 인테리어에 27층에서 보는 서울의 밤은 그야말로 미래도시 같았습니다. ㄱ자로 늘어진 통창으로 보이는 끝없이 보이는 푸른 하늘이 좋았습니다. 내가 숨쉬기에 매우 적합했습니다. 그곳은 한국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다양한 문화와 외국인, 내국인이 공존하는 지역이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의 모여사는 곳은 나에게 익숙합니다. 캐나다가 그런 곳이니까요. 한국의 캐나다가 필요했나 봅니다. 그렇게 나는 23kg짜리 수트케이스와 함께 덩그러니 한국에서 다시 희망을 꿈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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