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피를 철철 흘리며 들어온 한국. 나의 얼굴은 굳어서 웃음 끼라고는 하나 없다. 눈코잎이 어딘가에 붙어있기는 해서, 보고, 듣고, 먹었다. 그러나 나는 감각이 사라진 식물 같았다. 살아있는 송장이라는 표현이 매우 적절했다. 보고 있어도 감흥이 없고, 듣고 있으나 들리지 않았다. 먹으나 맛은 없고, 뜨겁고 차가움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향기도 없는 세상은 건조해서 쩍쩍 갈라진 2D의 무채색 면체일 뿐이었다.
외면했다. 스스로 몸하나 일으켜 세울 힘이 없는 나를 모른척했다. 다리 하나를 침대 밖으로 밀어내고 겨우 선 육체는 기특하게도(이제와 회상하니) ”내 인생의 선장이 되어야 한다! “고 외치는 강연장으로 향했다. 답을 찾고 싶은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힘을 잃어 쾌한 동공은 2리터의 눈물을 쏟아내기에 충분했다. 하도 울어 머리가 찌끈찌끈해질 즈음, 나는 등을 돌리고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에너지는 밝았다. 그런 사람들을 처음 보았다. 하얀 얼굴은 핏기가 돌아 파스텔 핑크색의 샤방샤방한 뺨을 지니고 있었다. 주고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부드러운 컬의 머리카락은 빛을 받으면 다이아몬드 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거렸다. 내 회색 가디건과 청바지와 대조적이었다. 울어서 화장이 지워진 마른 뺨은 상기되어 붉어져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어디에서도 생명의 단단함을 찾아볼 수 없다.
무감각한 나의 일상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빛이 사라진 육체와 얼굴에는 피부병이 올라오기도 했다. 내부 깊숙이 자리 잡았던 무언가가 표출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불청객을 처리할 힘도 없이 지낸 지 여러 날. 하루는 자기 계발계의 그루 같은 인물의 강연을 들었다. 맨 첫 줄에 앉았다. 물론 이유가 있다. 이번에야 말로 답을 찾겠다는 의지이다. 뚫어져라 그의 입과 제스처와 강의 화면을 쳐다보았다. 강연 중에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의 워크샵 시간도 마련되었다. 몇몇은 첫 만남이 아닌지, 이미 성취한 것들을 나누기도 했다. 돈과 행운은 그렇게 당당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