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최불암 선생님의 부고 소식에 대해 집필했다. 순 거짓말, 가짜 뉴스였다. 가짜뉴스라 말하는 분께 오히려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냐며 어깃장을 부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번엔 진짜다 라며 몇 가지 기사와 동영상 링크가 떴다. 그래, 이번엔 진짜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질 리 만무하지 하며 다른 링크들을 클릭했다. 하나씩 클릭하고 기사를 읽자 뭔가 심상치 않다. 정말 가짜 뉴스였다.
세상에! 내가 가짜뉴스에 속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 최불암 선생님의 연세와 최근 건강이슈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은 탓일 수 있다. 가짜뉴스를 듣고 그분의 최근 휠체어를 타고 타나 나셨다는 근황을 듣고 타당하다 생각한 것이다. 그분이 돌아가심이 타당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발상이다. 어느 누가 어떻게 되든, 생사에 대한 것에는 타당한 것이 없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었던 탓이다. 검증된 정보인지 먼저 확인부터 했던 나와 매우 상반되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이 생긴 계기가 있다. 원하지 않아도 노출된 정보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외부의 자극적인 정보에 호기심이라면 으뜸인 내가 끌려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 나는 발맞춰가기가 바빴다. 다리가 힘들어도 헉헉대며 이런 정보 저럼 정보를 확인하고 분석하기 바빴다. 그러다 이 모든 것을 완벽히 아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을 들었다. 부정적인 정보는 더더욱 나의 삶에서 차단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미디어를 멀리하고 뉴스를 끊었다.
얼리어댑터야 한다는 강박을 벗어나고 싶었다. 모든 게 무의미하다 느꼈다. 궁금해하고 아등바등 살아가는 나의 중심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고 있었다. 계획되지 않는 삶, 짜인 일과가 없는 삶, 근거가 없는 정보는 신뢰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지웠다.
과연 그럴까. 엊그제 가짜뉴스를 통해 다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계획이 없이도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고, 굳이 일과를 쪼개지 않아도 잘 살고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겐 세상일은 굳이 체험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과거 한 순간 모든 걸 놓았던 나와 닮아있다. 그런 삶이 행복하면 그것으로도 좋다. 나에게 해당하지 않음을 알았다. 가짜 뉴스가 나에게 준 교훈이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말 것. 내가 원하는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 군중 속에 나는 하나의 유일한 존재라는 것. 나는 기꺼이 그 하나의 존재로 살아가겠다는 것.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삶을 바꾸기 위해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기가 중요하다. 먼저 사람들에게 휘말리지 않기. 그다음은 내 할 일을 알기. 그리고 하나씩 해나가기. 이루어진 것만이 보인다. 과정은 중요하나 결과물이 더 중요하다. 나만의 결과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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