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아직 애야.”
최근 동기부여의 대가 김미경 선생님이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하신 말씀이다. 유독 핼쑥해 보이는 모습인데 아직 애라는 그녀의 말처럼 목소리는 여전히 꽤나 명랑하다.
SNS에 어떤 이가 그랬다. “저 나이에 무슨 재미로 살까?” 한 중년을 보고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했다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자신이 중년이 되어보니 여전히 세상은 재미있고, 자신이라는 사람이 과거와 그리 변한 게 없음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전히 20대의 열정과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남성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성별을 떠나 결국 사람의 본질은 웬만해선 그대로다. 본질이라면 타고난 순수성, 감정 그런 것들이 아닐까. 과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늙지 않는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뇌는 늙지 않고, 뚜렷이 보이는 육체는 늙는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오히려 어린아이처럼 변한다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20대에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제목이 생각이 나진 않지만 영화는 할머니가 주인공이었다. 보통 할머니하면 인자하고 따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그러나 천만에였다. 영화 속 할머니는 심술쟁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더랬다. 영화 속 내용을 잠깐 소개하자면 한 80대 할머니는 아들 부부와 산다. 그들은 바쁘고, 며느리는 뭘 해도 할머니의 눈에 이뻐 보이지 않는다. 누가 봐도 착한 며느리인데, 늙은 시어머니는 괜히 심통을 부린다. 청소가 된 집안을 부러 어지르고, 예쁜 화단의 꽃을 짓밟아 쑥대밭을 만들기도 했다. 보는 내내 어이없고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이 불편했다. 결국 집에 불까지 내고 떠나는 모습이 악마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고약하게 행동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영화가 끝나자 나의 할머니(친. 외)들과 상반된 모습을 한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어쩌면 앞으로 내가 겪어야 하는 절차 중 하나이거나, 나의 미래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참 이상한 것은 그녀의 행동의 나의 할머니들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와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 인자한 미소와 사랑 넘치는 시선은 어른 노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그러하다고 각인하기에 충분했다. 그랬던 노인의 모습이 그녀를 보고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았을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노인으로만 치부했다. 못된 악동처럼 변하는 노인의 모습이 무서웠다. 영화는 꽤 오랫동안 여운을 남겼고, 노인세대의 소외감. 외로움을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에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런 감정의 반발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관하여 몇 년 전, 여러 연령대의 수강생이 있는 민화클래스에서였다. 꽤 열정적으로 사시는 70대 어르신이 계셨다. 그림도 잘 그리시고, 가정일도 여전히 주도적으로 도맡아 하고 계셨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솟아나시는지 한참 후배인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런 어르신의 모습을 한 그녀가 어쩌면 나보다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남편분과의 옛날이야기를 할 때였다. 수줍게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소녀시절의 그녀가 생생히 떠오르는 듯했다. 그녀는 여전히 10대, 20대의 소녀였다. 겉모습에서 드러나는 표면적 이미지를 한 꺼풀 벗기고 보니 살구빛 속살이 드러났다. 마음이 그렇게 여릴 수 없었다. 누가 그녀를 노인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그 모습에서 나는 진심으로 사회가 만들어놓은 세대의 틀을 깨트리고 싶었다. 이런 욕구는 한 해 한 해를 거치며 더 강해지는 듯하다. 매년 더 나이를 드는 엄마가 안타깝기도 했다. 엄마의 세대를 이어 나의 중년기, 노년기를 생각하게 된다.
노인이라면 인간사를 통달하고, 온화한 미소만 지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는 삶의 파도를 생이 마감할 때까지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일렁이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 성숙해지기는 하겠다. 혈기왕성했던 과거와는 달리 잘 익은 과일처럼 경험에서 얻은 원숙함이 있을 테니.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과 순수성은 여전하지 않을까. 인간은 감흥 없는 무료한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언제까지나 설레고 솜사탕처럼 폭신한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존재다. 노인도 여전히 수줍은 가득한 미소를 짓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