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버킷리스트 5가지를 적어보세요.”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을 헤집기에 바쁘다. 6년 전 일이다. 처음 뵙고, 다시는 뵙지 못한 분들과 함께했던 심리 상담 워크숍. 답변을 도출하기 위해 5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상담 선생님의 지령이 떨어지자, 나는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거침없다. 분홍색 4절 도화지가 순식간에 1부터 5까지 채워지고, 형형색색의 스티커로 장식되었다. 방 벽에 붙여놓은 내 버킷리스트는 고귀하고 빛이 났다.
1.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살아보기
2. 사업을 해서 경제적인 자유를 얻기
3. 어려운 상황의 여성들을 돕기
4. 배우고 싶은 것도 마음껏 배우기
5.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기
직관적으로 썼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쓴 걸까? 아니다! 당시 내 머릿속은 이 다섯 가지 문장으로 가득했다. 각인이 되어 있었으리라. 이유가 있었다.
2019년 나의 세상이 둘로 쪼개지는 일이 있었다. 나와 세상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무음 처리된 진공 속 세상처럼, 공기의 움직임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외모로 이삿짐을 쌌다. 온화한 표정에는 엷은 미소도 있었다. 항공권을 예매하고, 데이지가 흐드러지게 핀 꽃밭을 밀로와 산책했다. 5월의 어느 날, 카펠라 호텔 테라스에 앉았다. 달콤 짭짜름한 캬라멜 솔트 플레이버(맛)의 아이스크림을 마지막으로 상하이의 모든 것들과, 아니 어쩌면 그 이전의 모든 삶에 작별을 고했다. 나를 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실핏줄 붉어진 시선뿐이었다.
온화한 표정과 엷은 미소 속에 눌러둔 슬픔은 한국에서의 삶이 시작되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너덜너덜하고, 찢긴 마음은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흐물거렸다. 종종 과거가 눈물이 되어 흘렀다. 사이사이 숨을 쉴 수 있었다. 결국 삶을 포기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럴 힘이 인간인 나에게 있었다.
숨쉬기를 다시 하며, 질문이 시작되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이지? 다른 세상으로 가지 못했다면, 나의 소명을 다하고 가자. 내가, 이 세상에 덩그러니 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질문이 떨어지니 답을 찾아야 했다.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뇌가 꽤나 많은 에너지를 쓰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이 걸렸을까? 나는 확고한 결심을 했다.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가자.”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라는 존재와 과거, 그리고 이 우주와 화해하기 시작했다.
6년 전 작성한 나의 버킷리스트는 여전히 벽에 붙어있다. 눈뜨면 보이는 곳에 있으니 잠시 방황해도 돌아볼 곳이 있어 좋다. 어떤 단체에서는 핵심 가치에 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랑으로 넘치고, 나만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매력 넘치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의 단어가 다른 의미의 단어를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렇다. ‘자기다움’, ‘미소’, ‘따듯함’은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 상태의 단어다. 그렇게 큰 단어를 선택하고 가능한 한 많은 가치를 내 안에 담고 싶었다. 내 삶을 지탱하는 핵심 가치가 그렇게 포용력이 있었으면 했다.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듯하나 변화가 또 있으면 어떠한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든 좋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거창해할 것 없는 하루가 흔적 없이 사라진 하루보다 나은 것처럼.
목표는 가지되 집착은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진리다. 내가 써 내려간 버킷리스트에 집착하지 않는다. 소명에 집착하지 않는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하듯 하나씩 충실히 해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