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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22. 2023

널 담은 공간

이름이 ‘널 담은 공간’이었구나! 

해방촌 교회 근처 코너에 자리잡은 이 카페는 한 면은 평지 다른 한 면은 내리막이라 왠지 아슬아슬 건물 모서리를 발로 디디면 넘어질 것 같다. 예전에 어떤 TV프로그램에서 “헌 집을 고치면 이렇게 바뀝니다!”라며 한순간에 뒤집힌 집의 이미지를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 카페를 보면 왠지 그런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될 것만 같아 매번 불안하다. 


카페 이름은 또 어떤가. “널 담은 공간”을 ‘널 닮은 공간’으로 읽고는, 너의 어떤 점을 ‘닮았다’는 걸까 하면 매번 지날 때 마다 의문이 들었다. ‘너’는 연인일까, 친구일까, 부모님일까, 그도 아니면 강아지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아이 모르겠다!‘하고 생각을 흘려 보낸다. 그리고는 어느날 드디어 통창으로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이 카페를 찬찬히 바라본다. 입구의 왼쪽 벽에는 작은 칸으로 나뉘어진 책장처럼 편지함이 빼곡이 진열되어 있다. 그 편지함에 엽서크기의 봉투가 잔뜩 꽂혀있다. 자세히 보면 모두 같은 디자인의 봉투이다. 중앙은 빨갛게 씰링이 되어있는 상태라 한눈에 봐도 봉투 안 내용을 볼 수는 없는 구조이다. 무얼하는 곳인지 짐작이 잘 안된다.  랜덤 메세지 카드일까. 컨셉을 잘 모르겠는 왼쪽벽을 뒤로하면 커피와 디저트를 주문할 수 있는 카운터가 나온다. 커피 메뉴는 여느 카페처럼 평범하고 디저트는 디자인이 나름 세련되고 종류는 매우 심플해 보인다. 손님이 그리 많아보이진 않았다. 최근까지는..


어느날부터 카페는 이전과 달리 활기찬 모습이 이어졌다. 찾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손님 중 열에 아홉은 봉투와 편지지를 손에 들고 있거나, 편지지에 무언가를 쓰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곳은 일반 카페라기보다는 편지를 쓰는 카페였다. 카페 주인의 말에 의하면 편지를 원하는 날자에 꽂으면 일년 뒤 그 날자에 보내준다는 것. 우체부같은 역할을 하신다는 건가. 영화 <일포스티노>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내가 쓴 편지가 일 년 뒤 어딘가로 간다면…

생각에 젖는다.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까. 내가 쓴 편지를 일 년 뒤 누군가가 읽는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일년 뒤 편지 속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어떤 이는 일년 뒤, 자신의 모습을 쓰고 앞으로의 시간에 충실할 것임을 다짐할 수도 있고, 또 어떤이는 일년 뒤, 친구와 연인에게, 또 가족에게 보내는 메세지를 쓸 수도 있겠다. 나는 어떤 메세지를 누구에게 보내고 싶을까. 골똘히 생각을 하니, 나와 주변 사람들이 보인다. 과거가 보이고, 지금 이순간, 그리고 미래가 보인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의 감정은, 나의 다짐은, 내 주변 사람들은…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만으로 끝나던 일들이 편지를 쓰면 왠지 구체적으로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편지는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으로 가도 되겠다.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던 일들을 편지속에 녹아낼 수 있겠다. 손편지를 써본지가 참 오래되었다. 친구에게 쓰던 편지. 이메일과 인터넷 메신저가 없었던 시절, 그래도 친구들에게 편지를 썼었는데. 편지에는 중요한 내용도 있었고, 일상이 담겨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는 언제나 “보고싶다, 잘 지내고 있어”로 마무리 지었던 것 같은데….


널 담은 공간에서 나를 담아, 너를 담아 편지를 써보려 한다. 안녕, 잘 지내니? 하고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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