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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21. 2023

콤콤 오락실


해방촌 신흥시장에는 80년대로 돌아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있다. 바로 콤콤 오락실. 가끔 신흥시장을 둘러보다 이 곳에 걸음을 멈춘다. 오락실 앞에 세워놓은 푯말에서 레트로 분위가 물씬 풍긴다. ComeCome 오락실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웨스턴 문화가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전파되었으니 말이다. 오락실 안에 있을 별천지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선뜻 발을 옮기지 못했다. 두꺼운 플리스틱으로 된 투명커튼을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오랫동안 그러지 않았다. 마치 영화 <트론>에서처럼 다른 세계로 넘어가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가보다. 혹은 나의 추억 속 오락실을 추억으로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떡볶이를 처음 먹었다. 아마 그 전에 엄마가 해준 떡볶이를 먹어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서 만난 친구와 먹은 떡볶이는 달랐다. 길쭉한 분필모양의 떡이 빨간 옷을 입고 나란히 접시에 올려진 모습이 간결했지만 푸짐해보였다. 정덕이는 이 떡볶이를 너무도 좋아해서 매일 갔다. 특별히 곁들이는 채소도 없이 그저 떡과 빨간 소스뿐인데... 나는 떡볶이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정덕이가 좋아하니 좋았다. 


내 친구 정덕이는 떡볶이 뿐만아니라 게임도 좋아했다. 학교 앞에 과자와 학교 준비물을 파는 가게가 있었다. 어느날 가게 안 구석으로 커튼을 쳐있는 걸 발견하고 그 비밀의 장소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정덕이는 이미 몇 번 와 본 듯 나를 안내해주었다. 그 안에 오락기계가 있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게임을 시작하는 친구 옆에 서 한참을 구경했었다. 너구리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먹어야할 과일이 참 많다. 바나나, 딸기, 앵두, 수박, 복숭아. 옥수수와 당근도 있다. 귀여운 괴물을 피해 다리를 깡충깡충 건너고 사다리 위로 아래고 내려오는 순발력이 필요한 게임이다. 맛있는 과일을 먹을 때 마다 점수가 500점씩 올라가면 나는 왠지 입맛을 다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정덕이가 과일을 많이 먹으면 옆에 앉아 물개박수를 치며 기뻐했었는데. 또르륵 하는 기계음과 특유의 배경음악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는데. 콤콤 오락실 앞 간판을 보고 나는 정덕이와 함께했던 너구리 게임이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덕이네 집에는 오골계와 토끼가 탁구장과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 그리고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평범한 집의 모양이 아니어서 참 의아했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근처 회사의 수련원 같은 곳 안에 살고 있었나보다. 나는 매번 가면 동물을 구경하곤한 후 책장에서 책을 꺼내보곤 했다. 그때 처음으로 제인에어와 데미안같은 책을 접했는데 당시 나에게는 너구리 게임만큼이나 다른 세상을 알려주었던 소중한 존재였다. 책 속 세상은 내가 열 살의 내개 접해보지 못한 이국적인 풍경이 있었고, 아름답고 신기한 세상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슬픔과 환희가 있었다. 언젠가는 탐험해보고 싶은 세상이 있었다.


정덕이는 나에게 편지도 잘 써주고, 그림도 그려주었던 소중한 친구였는데, 학년이 올라가면 서로 다른 세상을 경험하면서 사라졌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친구를 콤콤 오락실 앞에서 마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오락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정덕이와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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