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00-91] 셀프 코칭 90. 휘갈긴 글쓰기

by 벨플러 Miyoung

휘갈겨 글을 써본 적이 있는가? 나는 글쓰기를 그렇게 시작했다. 그건 글쓰기라기보다는 감정 표현이었다. 나의 글은 앞뒤 문맥도 맞지 않았고, 문법도 틀리고, 글씨도 엉망이었다. 글씨가 엉망이니 내용도 이해할 수 없었다. 손이 움직이는 대로 노트에 휘갈겨 썼다. 다소 강한 표현이지만 맞다. 나는 그렇게 글을 쏟아내었다. 잘 써지지 않으면 “무슨 말을 써야 하지”라 쓰며 지면을 채웠다. 재빨리 3페이지를 써야 했으므로 생각할 시간도 부족했다. 생각하려 해도 글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모닝페이지라는 기상 후 바로 쓰는 글이었다. 휘갈겨 쓴 글은 그저 순간 떠오르는 파편들의 나열이었다. 한 6개월씩 매일 그렇게 했을까. 모닝페이지 글쓰기로 나는 나를 치유하고 치료하고 있었다.


내 모닝페이지에는 내 인생에서 가장 묵직한 기억과 관련된 인물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감정이 주를 이루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억눌렀던 분노.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검고 붉은 분노를 쏟아내었다. 오늘 한 브런치 작가의 고민을 읽고 그때가 생각났다.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올라오는 상처를 휘갈겼던 순간들. 그 불같았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눈물로 써 내려간 감정들은 어느 순간 깨끗이 정화되어 이제는 속이 훤히 보이는 물속처럼 투명하고 반짝거린다.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불쑥하고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삶이 끝나지 않는 한, 감정도 계속 손을 흔드는 법이니. 그러나 예전처럼 두렵거나 불쾌하지는 않다. 오히려 이유를 잘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통달한 사람은 아니다. 이해하려 노력한다. 방금 전에도 어릴 적, 내가 습관적으로 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멍하게 생각하는 아이. 나는 왜 그렇게 멍하게 창밖만 바라보았을까. 당시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초점 잃은 시선은 안으로 안으로 향해, 세상은 뿌옜다.


모닝페이지에 쓸 거리가 생겼다. 휘갈겨 써봐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