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이 종종 떠오를 때가 있었다. 번쩍이는 섬광처럼 나도 모르게 나타나는 장면들이다. 그런 장면들은 대부분 격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었다. 낯선 환경과 서툰 말과 행동. 그래서 빚어진 사건들.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기억 속으로 들어가 상황을 바꾸고 싶을 때도 있다. 꿈에서는 힘센 아이로 변해 날 괴롭힌 아이들을 마구 때리기도 했다.
엄마, 아버지, 언니, 오빠들, 친척들, 친구들, 선생님들 등. 심지어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했던 동물들과의 추억. 자연을 마음껏 만끽하던 기억. 잊고 지냈던 셀 수 없이 많은 기억들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른다. 그 어린 시절에도 매일 수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을 배우고 있었다.
과거는 바꿀 수 있다고 여러 심리학자들이 말한다. 처음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를 떠올려 보고, 기억 속에 들어가 놀면서 알게 되었다. 정말 과거는 바꿀 수 있었다. 인간의 기억은 단편적이다. 내 기억과 상대의 기억이 전혀 다르다는 것으로 입증된다. 나는 괴로웠으나 상대는 즐거웠던, 나는 부끄러웠으나 상대는 기억조차 못하는. 그런 과거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기억에 휩싸여 괜히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어릴 적 기억을 붙잡고 있었던 적이 있다.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다. 기억이 추억이라는 감성을 덧입으면 행복했다. 나쁜 기억은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명상을 통해 어릴 적 나쁜 기억을 정화하는 작업을 시작했을 때였다. 해결해야 할 숙제이니, 진심으로 임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 장소에 갔다. 나를 보고, 주위를 살폈다. 제삼자가 되어 바라보고, 어린 나와 만나 아이를 안아주고 보듬는 작업도 동반했다. 많은 순간 감정이 격해지고,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평화가 찾아왔다.
곤경에 처했던 나를 만나는 작업은 중요하다. 과거를 재정비하고 벗어나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긴다. 부여잡고 있던 손을 놓을 수 있다.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과거는 그렇게 바꿀 수 있다. 힘들었던 과거를 행복한 순간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다. 외면한다 하여 사라지지는 않는다.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는가?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가? 과거를 바꾸는 작업이 쉽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건에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사건보다 인물을 보면 어떨까. 나와 상대를 바라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를 추천한다. 나는 그렇게 과거를 바꾸었다. 사건은 발생했을 뿐, 그 이상도 아니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게 된다.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면 그도 서툰 인간임을 알게 된다.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를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다. 서툴렀던 인간을 바라보라는 것. 그것뿐이다. 그 사람 때문에 지금까지 괴롭다면 나만 손해다. 그를 떠나보내고, 나를 본다. 서툴렀고, 겁에 질렸던 나. 내가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성숙해지도록 용기를 주고 격려해 본다. 어깨를 펴고 꽃꽂이 서서 더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이제 어른인 내가 봐도 자랑스럽고 기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어린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이제는 기억에도 희미한 과거가 그저 행복하고 평화로운 추억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