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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24. 2023

야닉을 위하여


우리는 하늘이 가까운 해방촌의 한 루프탑 카페에서 만났다. 코로나로 닫혀있던 국경이 조금씩 열리면서 외국인들의 방문이 늘었나보다. 오늘따라 카페에 외국인들이 많다. 아직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나보다. 회복은 시간이 필요하므로. 야닉도 그렇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한국에 온지 6년 째. 코로나 19 전이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더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야닉의 목소리는 다소 격양되었으나 분노보다는 슬픔이 느껴졌다. 관계에서 느끼는 피로함이 보인다. 아이들의 엄마인 아내와 헤어지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맞다. 그러나 그러고 싶다고 한다. 

“그래, 힘들겠다, 정말 힘들 것 같은데...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봐. 그게 정답은 아닐거야.”

내가 말했다. 오랜 친구인 그의 성향을 잘 알고 있고, 그의 부인도 알고 있다. 프랑스인과 한국인의 만남은 그저 국적이 다른 사람들의 만남은 아니다. 각자가 지니고 있는 각자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의 본능과는 조금은 다른 영역이 아닐까. 집단이 다르면 문화가 다른 듯, 서로 다른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다른 문화를 가질 수밖에.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 처음부터 이 세상의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만나지 않듯, 어느 순간 관계가 삐걱 거릴 때가 있다. 당연하다. 아니라면 매우 좋겠지만... 결혼을 한 관계에서의 삐걱거림은 더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 같다. 아마도 사회적인 매듭이 더 단단해서이지 않을까. 그래서 헤어짐을 이야기할 때 더 신중해 지는건데.


오늘 그의 목소리에서 결연한 의지와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았다. 오래오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아메리칸 드림처럼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오는 외국인들이 많다. 야닉도 그저 한국이 좋았다고 한다. 일본에 일년동안 지내다 한국을 방문했는데 한국만의 묘한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일본스럽지않고, 중국스럽지도않은. 그 중간쯤 어디에 있는 한국인들 고유의 정서와 풍경이 좋았다고 한다.


야닉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내 주위의 외국인 친구들의 삶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바브라는 남편의 직장 때문에 생각지도 않게 어느 날 한국으로 왔다. 루시는 친구 덕에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또 가브리엘은 한국인 여자 친구를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행복한 만남과 꿈이 있어 이곳으로 왔나보다. 


한참을 야닉의 이야기를 듣는도중 갑자기 오른쪽 하늘색이 황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황금 태양에 황금물결이 도시에 퍼진다. 노을 지는 도시를 바라보며 모두가 탄성을 지른다. 우리가 한 말들은 물거품으로 사라져버린다. 힘든 일이 있었기나한걸까. 하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 그들 중 야닉과 나도 있었다. 방금전까지 참 중요하고 무거웠던 삶의 주제가 한번의 일몰 장면으로 사라젼버린다니... 그렇다면 고민이 정말 고민인거나 한걸까.



특별하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나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실망이 있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참 마음 아픈 일을 겪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삶은 늘 아프기만은 하지 않음을 아니까. 이렇게 황금 빛 태양을 보는 순간에도 우리는 아픔을 행복함으로 전환할 수 있으니까. 야닉이 황금빛 태양의 충만한 기운을, 노을지는 분홍빛 하늘에서 삶의 농익함을 느낄 있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상상을 해봐, 야닉. 저기 저 집들이 보이지? 모두 다 무슨 사연들이 다 있을거야. 그렇지만 매일을 살아가잖아. 그러니 너도 매일을 일단은 살아보는 게 어때. 오늘이 그 첫 번째 날이고.”

이곳에서 보이는 집들은 모두 장난감같아 현실적이지 않다. 간혹 보이는 사람들은 마치 여기저기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분명히 그 속은 매우 현실적이고 매우 생생할 것이다. 실망스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을 바라보게 된다. 타인이 되었든 내가 되었든. 감정에 휩싸여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흐려지기마련이다. 


“야닉, 힘들면 이곳으로 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울 뿐이야. 세상 속에서 아등바등하던 ‘나’가 탈출해서 하늘로 올라 온 기분이 들거든. 그럴 때면 속상했던 마음이 사그라든다니까?”

내가 프렌치프라이를 베어 물며 말했다. 대단한 조언가처럼 야닉에게 이야기하는 듯하나, 누구보다 잘 안다. 나에게 하는 말임을... 

고개를 돌려 풍경을 바라보았다. 핑크색 물감이 하늘에 도시에 우리의 마음에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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