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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Jul 25. 2023

경마선수 J는 불 위를 걸은 적이 있다


이 친구, 매일 아침 남산 타워로 올라간다니까

으응, 남산 타워까지? 좋지! 운동도 되고. 나도 지금은 가끔은 가지만 예전엔 정말 자주 갔어.

근데, 이 친구 말이야, 이 더위에 옷을 네 겹을 입고 가는 거야. 

뭐? 왜? 괜찮아? 이 더위에?


이제야 친구라는 당사자 J가 이야기 한다.

네,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체중 조절을 해야 하거든요?

왜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작고 외소해보이는 그를 보고 내가 물었다.

네, 저는 말을 타거든요.

아하, 승마요. 네 그럴 수 있겠네요. 그런데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아니, 아니요, 경마요. 전 경마 선수에요.

아하, 네 승마선수요, 앗 잠깐 네? 경마? 경마 선수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몇 초간을 어안이 벙벙한 사람처럼 말을 잊지 못했다. 몇 초 뒤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 승마가 아니라 경마요? 경마? 말과 달리는  그 경마?

지금까지 정말 여러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예술가, 사업가, 연예인, 공무원 등, 그런데 경마선수라니. 

전 정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다고 생각했는데 경마선수는 처음 뵙네요. 그럼 과천에 계시나요?

아니요, 사는 곳은 경리단길이고 과천에는 일을 하러 가죠. 경주는 매주말 토요일, 일요일에 있어요. 언제한번 아튜랑 놀러오세요. 


경마는 재미삼아 캐나다에서 프랑스에서 본 적이 있다. 크게 배팅을 하지 않아도 한 두 번씩 가곤 했는데, 그 뿐이었다. 전력질주를 하는 말과 선수를 보면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참 힘든 스포츠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말과 가장 긴밀하게 밀착이 되어 달리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말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이다. 승마장에나 가야 볼 수 있으니 쉽게 볼 기회가 없어 아쉬웠던 참에 잘 되었다 싶다. 


우리는 모로코 음식점에서 레몬치킨과 호머스, 양고기 타진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다. 프랑스에서 호주를 거쳐 한국에 온 J는 6년간 경마선수로 과천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선수로서의 삶을 위해 매 순간 컨디션을 조절하고, 체중을 체크하는 몰입의 순간을 사는 그가 궁금하던 찰나 그가 말한다.


저는 어릴 적에는 매우 종교적이었어요. 가족의 종교를 이어받아 교리를 신실하게 실천하곤 했죠. 불 위를 걷는 일도 했었어요. 

불 위를 걸어요?

네, 지금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종교를 버린 건 아니죠. 저는 저만의 신이 있어요. 가끔 불안한 순간이 오거나 길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면 저의 신께 기도를 하죠. 제 신은 붉은 색을 띈 이 분이에요. 저의 어머니의 신은 이분이고, 아버지는, 또 제 동생은 이분이죠.

J는 자신의 신과 부모님의 신, 그리고 여동생의 신을 각각 보여주며 말했다.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자신을 일으켜 주었다는 그 만의 신. 나는 나의 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신이 있지 않을까. 꼭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존재가 아니더라도 방향을 잃었을 때 나를 바라보고 나를 지켜줄 존재. 당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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