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Aug 02. 2023

영수목욕탕

요즘도 사람들이 목욕탕에 갈까. 이태원 영수 목욕탕을 지나며 드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목욕탕보다 사우나라는 명칭이 익숙하다. 언제부터 사우나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어릴 적 기억속에 있는 멀리 키큰 빌딩에 ‘터키식 사우나’ 라고 써있는 걸 본적이 있다. 가본적은 없지만 그 곳은 왠지 진지한 어른들만의 장소처럼 기억되었다.


목욕탕이라는 단어는 진지한 사우나보다는 오히려 정겨운 시골의 향기가 난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엄마와 근처의 시내 목욕탕에 간 적이 있다.


엄마 손을 잡고 처음으로 간 곳에는 목욕탕이라고 입구에 커다랗게 써놓은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유난히 트랜디해보였고 뭔가 있어보였다. 그도그럴것이, 7,80년대 당시에 시골에는 목욕탕이 그리 많이 않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때부터 목욕을 타인과 함께하는 문화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목욕탕 안은 그야말로 또 다른 외부의 세상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옷을 입고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알몸으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엄마는 목욕탕을 이용할 준비가 매우 잘 되어있는 사람처럼 꺼리낌없이 쉬이 번호키를 받고는 내 손을 이끌어 번호가 가르키는 사물함으로 성큼 걸었다. 그리고 이내 겉옷부터 벗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맨 몸으로 탈바꿈 하는 게 아닌가. 엄마와 함께 살았어도 나는 엄마의 맨 몸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엄마의 모습은 참 낯설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우물쭈물거리는 나에게 어서 옷을 벗어보라는 눈짓을 주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최대한 몸을 숨기며 옷을 하나씩 벗었던 어린 내가 생각난다. 어떻게 하면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날까 좀 민망스러웠던 나에 반해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행동했다. 마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사실은 몇 겹은 되는 알몸 옷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목욕탕에서 사람들은 모두 목욕탕법을 따르고 있었다. 알몸이 당연히 환영받는 곳. 목욕탕…

맨 몸으로 티비를 봐도 이상하지 않았고, 맨 몸으로 바나나 우유를 마셔도 맛만 좋았다. 


욕탕에서 엄마는 나름의 순서를 따르고 있었다.  먼저 온 몸에 비누칠을 한 뒤 씻고는 큰 욕조에 몸을 담궜다. 보글보글 뜨거운 물이 올라오는 곳 주위에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그 곳이 명단자리인 것 같았다. 나도 엄마를 따라 큰 욕조에 발을 담그려니 진저리나게 높은 온도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엄마는 평온한 표정으로 이 쪽으로 오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한참을 뜨거움의 괴로운 시간을 거친 뒤 나는 잠시 욕탕 밖의 공기를 맡을 자유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번에는 초록 때수건이 등장했다. 엄마는 초록색으로 나의 피부를 밀어대기 시작했다. 빨갛게 달아오른 피부는 흐믈거리는 빨래판 같았다. 빨래판은 엄마의 절도있는 손놀림에 이리 저리 일렁거렸고, 나는 제발 엄마가 그만하기를 기도했다. 급기야 현기증이 나자 욕탕 문을 열고 나와 조금이라도 찬?공기를 맡으려 애를 썼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목욕탕 그 후덥지근한 공기는 생각만해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영수목욕탕을 지나가면 어릴적 엄마와 함께했던 순간이 생각난다. 그때 엄마는 참 힘이 넘쳤는데… 이제는 목욕탕에 자주 가지도 않고, 초록 수건으로 힘차게 빨래를 하던 엄마의 패기도 사라진지 오래다. 목욕탕 간판을 보자니 연약해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오늘따라 씁쓸해진다.

작가의 이전글 하얀 밤 - 라 누위 블렁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