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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Aug 01. 2023

하얀 밤 - 라 누위 블렁쉬

 하얀 밤

라 누위 블렁쉬(La nuit blanche). 밤을 하얗게 보냈다. 끈적끈적하고 후덥지근했다. 캐나다에서와 같은 쨍한 추위와 얼음은 없었다. 이태원의 여름밤은 심해의 어딘가를 헤매는 듯 아득하고 무거웠다. 장마철이라 아침 7시에도 공기는 눅눅했다.


밤새 들고 있던 붓이 헛 곳을 돌곤 했다.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려보면 붓은 있어야 할 곳을 떠나 어느새 있어야 할 곳의 위나 아래에서 큰 점을 찍고 있었다. 색을 칠하고 선을 긋고 또 색을 칠하고. 나는 졸다가 정신을 차리고, 또 졸다가 정신 차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듯했다. 선생님의 아뜰리에에서 오랜만에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태원 일대에는 아뜰리에가 많다. 사진 작업을 하는 곳, 쿠킹 클래스를 여는 곳, 시간별 주방을 빌려주는 곳, 파티룸을 빌려주는 곳, 도자기를 만드는 곳, 꽃 클래스를 여는 곳, 그리고 선생님의 아뜰리에처럼 그림을 그리는 곳 등등. 


“그림은 그리움이다.” 어떤 화가의 말했다. 그는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사람을 그리기도 하며, 추상적인 어떤 형태를 그리기도 한다. 그는 매번 그리움을 캔버스에 표현한다고 했다. 그의 그림이 나의 취향과 꼭 맞지는 않았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리움‘의 존재를 인식하기에는 충분했다. 어찌됐든 그리움을 표현한다는 …. 그의 말은 당시에는 과히 신선했다.


그리움은 그림을 통해서만 표현되는 건 아니었다. 생각과 감정을 적어가는 글 또한 결국 ‘그리움’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창작의 활동은 모두 그리움이라는 걸…. 우리는 그 그리움을 위해 기꺼이 밤을 지새울 수 있는 존재인가보다. 사실 나의 누위 블렁쉬는 대학이후 처음이었다. 


그리움은 과거의 경험이나 사물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움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보고 있어도 당신이 그립다는 말처럼 함께 있어도 일어나는 그리운 감정은 관계적 동물인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나보다.


궁중 속에서 생기는 공허감은 어쩌면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닐까. 나는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도 함께 그림을 그리다보니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자연스레 생긴 모습이다. 우리는 삶과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한다. 


최근에 나와의 관계에 대하여 선생님과 나, 또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감정. 그리움은 그렇게 현재진행형이다. 나는 과거의 그가, 과거의 그때가, 과거의 그 기억이 그리워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나보다. 지금의 내가 지금 나의 생각이, 지금 나의 감정이 그리워서 그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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