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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Aug 20. 2023

오펜하이머

진주만 공습을 주제로 한 영화를 캐나다에서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2001년이었고, 나는 일본에 대해 꽤 비판적 시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으로 거슬로 올라가 보면 한국을 강타했었던 ‘일본은 있다’, ‘일본은 없다’라는 전여옥 지음의 책 시리즈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글쓴이가 일본에서 지내면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늘 한국과 대칭관계에 있어서, 제목부터 한국에 있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무렵이었는지, 나는 영화관에서 ‘마루타’라는 영화를 본 적도 있다(아, 영화 이 전에 책을 먼저 읽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었는데, 당시 어린 나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이런 이유로 진주만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어쩌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핵폭탄에 대해 인과응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후에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희생자들의 사진과 글을 보며, 전쟁은 어떠한 형태로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임을 깨달았다. 또한 전쟁에 사용되는 그 무기들의 발전으로 이 세상의 힘의 권력이 움직이고 있음에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인류는 악마로써만 살아가는 존재는 아니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어느덧 매우 무거워지고 거창해지는 주제에 압도되는 듯하다.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만든 최신작이다. 그의 작품은 늘 그렇듯 외면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자폭탄을 만든 오펜하이머에 관한 이야기라니… 궁금했던 찰나 시간을 내어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명동 CGV이다. 버스정류장 두 정거장이면 갈 수 있어 편리하다.  남산 3호 터널을 지나고 명동에서 하차하고 CGV 눈스퀘어 8층으로 올라가는데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다. 방금 예매한 자리에 앉아 잠시 뒤 영화가 시작되었다. 처음 장면에서 나는 이미 만족스러웠다. 수없이 많은 별이 쏟아지는 우주. 칠흑처럼 어두운 우주에 수없이 많은 파랗고 하얀 별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더니, 영화관을 가득 채우고 내가 앉은 I열까지 점진적으로 퍼지더니 내 주위를 온통 동그랗게 둘러싸고 있는 게 아닌가. 이내 놀란 감독 특유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매우 신경을 거슬리는 특유의 주파수 음악을 사용하는 듯하다. 첫 장면부터 나는 압도되었다.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 당신은 최고야.’


이번 영화가 오펜하이머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영화의 주제를 언제부터 그가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경우에는 2019년, 햇수로 5년 전부터 양자역학에 대해 듣고, 관심을 가졌었다. 지금도 그냥 지나가는 귀동냥으로 알고 있기는 하지만, 우주의 모든 물체는 파동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나에겐 가히 충격적이었다. 파동은 에너지이다. 에너지는 내가 생각하고 관심을 두는 힘이다. 이때부터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영화는 아마 여러 번 봐야 할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영화이야기 전에 이 파동, 에너지의 기본인 생각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는 물리적인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함을 알았다. 생각은 뇌와 가슴의 상호작용이라고 본다. 이건 순수히 내 의견이다. 아무도 이렇다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의 경험으로 얻은 지금의 결론이다. 결론은 또 바뀔 수 있다.


어찌 됐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몸과 영혼으로 되어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영혼은 나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내가 어떤 시각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뿜어내는 에너지가 다를 것인데, 오늘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걸 반성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걸까. 타고난 환경이 열악하다는 핑계로 매우 이기적인 생각만 하고 살지 않았을까.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을 살기 위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내가 따듯한 기운을 줄 수 없는데, 타인에게서 그런 기운을 바란다는 건 어불성설.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가 먼저 주고 서브를 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된 하루였다.


영화를 보고 또 느낀 점이라면, 오펜하우머라는 인물은 몰입의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즘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 중이다. 나의 꿈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사회 통념상 좋아 보여서 원하는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오펜하우머라는 인물을 통해 나의 삶의 목적과 목표를 다시 생각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나. 내가 그런 상태가 되었을 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세상을 위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먼저 앞에 있는 당면과제를 마치고, 그 후 수십, 수백 번 생각했던 일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롤모델이 해주는 말을 또 상기하며, 오늘도 이태원 일대를 한 바퀴 돌았다. 명동에서 남대문 시장을 지나 서울역으로, 서울역에서 남산 소월길 중간의 해방촌으로, 해방촌에서 남산체육관 아래 새비지가든으로 세비지가든에서 경리단 길을 지나 다시 해방촌으로... 놀란 감독의 영화는 끝났지만 나의 영화는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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