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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08. 2023

후암동 대원정사

남산 소월길 아래에 루프탑 카페와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길이 있다.  해방촌에서 후암동으로 넘어가는 곳이다. 이전에는 주거지만으로 이루어졌던 곳이 언제부터 인가 작은 카페와 힙한 레스토랑이 하나 둘 생겨 2,30대 청춘들의 산책로가 된 듯하다. 높은 지대에서 노을 지는 서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니 자유로운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도 있겠다. 


이 근방의 후암동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간간히 디자인 회사나, 갤러리, 향수를 파는 트렌디한 가게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고요한 주거지의 분위기가 좀 더 느껴진다. 그중  특이한 건물이 있는데, 지나칠 때마다 궁금해서 잠깐씩 내부를 들여다보기는 했다. 


절이다. 나는 절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불교인이 아니어도 산을 오르다 절을 발견하면 꼭 들러 기도를 하곤 한다. 사실 도시에 있는 절은 일반적이지 않으니 발을 들여놓기가 꺼려진다. 지나칠 때마다 슬쩍 한 번씩 들여다볼 뿐. 그러는 찰나, 이 절의 2층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을 하는 일이 생겼다. 1층이 절이고 2층이 피트니트 센터이다. 좀 생뚱맞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경우도 아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 생뚱맞은 조합이 기회였다. 2층과 1층이 내부로 이어져 있어, 2층에서 운동을 마친 뒤 샤워를 하고 1층으로 내려와 자연스레 법당으로 향할 수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몸을 정갈히 하고, 법당에서 절을 하고 명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힐링할 수 있을까? 들뜬 마음에 이런 럭셔리하고 완벽한 방법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이 또한 취향의 차이니.. 이렇게 정보만 주기로 하고 들뜬 마음은 이내 내려놓는다.


대원정사 법당의 실내는 아담하다. 그리 좁지도 매우 넓지도 않다. 부처님이 있는 메인 법당은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구조이다. 푹신하게 깔려있는 바닥재 덕분인지 마음이 이미 편안해진다. 법당문을 열자마자 화하게 퍼지는 향냄새 때문이기도 하겠다. 정면에는 황금빛 부처님 조각상이 여러 개 있었다. 큰 조각상이 세 개, 사이로 작은 조각상이 두 개. 이 큰 조각상들의 배치가 특이하다. 가운데 부처님의 손 모양 때문이다. 


보통(지금까지 나의 경험 상)은 손모양이 오른손은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게 자연스레 무릎을 덮는 모양이고, 왼손은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는 모양인데 이곳은 다르다. 주먹을 쥔 두 손이 중앙에 합쳐있는 형상이다. 왼손이 아래 오른손이 왼손의 검지를 집고 위에  위치하고 있는 형태이다. 이런 손 모양의 부처님 상을 자주 보진 못한 듯하다.


그 앞에 주지스님이 매일 불자들과 말씀을 나누는 공간인 듯 낮은 테이블과 마이크, 방석과 큰 목탁이 있다. 부처님 조각상이 있는 뒤쪽과 법당 양옆 벽으로는  작은 부처와 보살상, 연꽃 촛불 등이 가득하게 장식되어 있다. 주지스님의 테이블 앞쪽에는 특이하게도 성당에서나 볼 수 있는 일체형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되어 있고, 성경책 대신 법문책이 각 자리에 놓여 있다.


이곳은 동국제강의 창립자인 장경호라는 분이 설립하였다. 1975년 생을 마감하기 전에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산속이 아닌 도시에 절을 세운 것인데, 1973년 매일경제 신문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당시에는 초현대식 건물이었다고 한다. 


이태원 일대는 지대가 높아서인지 교회와 성당이 제법 많다. 한국 전쟁 이후 세워져 제법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곳도 있고, 지역 특성 때문인지 처음부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곳도 여러 곳이다.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열려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떤 종교시설이든 대중이 편안히 방문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태원은 그런 공간들이 은근히 많이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나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고즈넉한 거주지 일대를 걷다가 어느 순간 보물 같은 공간을 발견하는 일이 생기니 말이다. 무심히 길을 걷다 보면 대원정사처럼 이렇게 도시 속 힐링 공간을 만나게 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이번에는 또 어떤 공간과 마주할까. 오늘도 길을 걷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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