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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09. 2023

보광동 스타벅스에서

“지금부터 말하려는 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녀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처음부터 다시 막힌다. 책 첫 문장이다. 요즘 들어 책이 읽히지 않는다. 문장 하나에, 단어 하나에 생각이 많아진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 때문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일까. 그래서 근처 보광동 스타벅스에 왔다. 오랜만이다. 더 가까이 경리단길에도 있지만 이곳이 좋다. 테라스가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나 테라스가 있는 장소는 왠지 여유가 느껴지고 자유롭다. 이곳은 2년 전까지 꽤 자주 왔던 곳이다. 당시엔 그래도 제일 가까운 스타벅스였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는 대중적인 이미지가 있고 편해서 컴퓨터 작업을 할 때 자주 찾게 된다. 


오늘도 오랜만에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도 다시 읽기로 했다. 한 번 읽었으나 여운이 남는다. 이 책은 더 탐구해야 하는 책이라도 되는지 쉽게 등을 돌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읽는데, 첫 문장부터 막힌다.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묘한 감정과 수많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글을 이어 읽어가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 김병종 화가가 할 말이 떠오른다. “새벽에 일어나 주로 그림을 그려요. 하얀 캔버스를 보면 가슴이 뛰고 설레죠. 이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리며 그 첫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내가 첫 문장을 읽고 느낀 감정이 화가가 말하는 첫 감정이라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는 건 아닐까. 어떤 사물이나 상황 속에 떠오른 첫 감정. 그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은 것이 중요해 보인다.


“지금부터 말하려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미 이 글에서 나는 ‘한 여자’가 나 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여자이다. 하루키의 말처럼 사실 나는 나를 잘 모른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메타적으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어떨 때는 꽤 괜찮은 사람 같아 보이고, 또 어떨 때는 매우 형편없는 사람 같아 보인다. 때로는 잘 알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 거다. 한 사람은 매우 많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나는 어떤 특정 인물로 정의되는 건 아니다. 이럴 경우에는 이렇고 저럴경우에는 저렇다. 그리고 이런 저련 경우는 매번 바뀌고 그럴 때마다 나의 모습도 매번 바뀐다. 


나도 내가 참 괜찮아 보일 때가 있다. 가령 한 무리의 집단에서 공통된 정보가 필요할 때,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거나, 빠르게 검색해서 알려주거나 하며 무엇이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참 괜찮아 보인다. 반면, 실수를 말아야 할 일에서 실수를 하거나, 덤벙되거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때 나는 스스로가 참 별로인 사람 같아 보인다.


지금도 이 소란스러운 스타벅스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참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문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별로 이기도 하다.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을 때, 테라스로 나간다. 낮 햇빛이 뜨거워도 바람은 가을기운이 난다. 푸르고 높은 하늘에 구금이 뭉게뭉게. 바깥공기에 머릿속에 가벼워진다. 주말이라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2층까지 자리가 꽉 차있다. 


음료를 만들어내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얼음 가는 믹서기소리, 웅성이는 사람들의 말소리, 수없이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소리…


그런데 이런 소음은 어떤 경계를 넘어 내가 알바가 아닌 듯하다. 나는 내가 나를 잘 아는지, 잘 모르는지에 대해 골똘히 생각 중이다. 결론이 나기나 할까.


잠시 뒤 테라스에서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식힐 예정이다. 음악은 듣자마자 기분이 좋아진다는 Sture Zetterberg의 Body to Body로 하기로… 그리곤 책을 읽을 수 있겠지!


https://www.youtube.com/watch?v=dGKlwvLbVsw&t=14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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