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Sep 07. 2023

남산도서관에서 다시 만난 하루키

그러고 보니, 그 유명한 하루키 작 책을 딱 두권 읽어 보았다! 유명 작가의 책 치고는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 수많은 작가들의 책 중 한 작가의 책을 두권이나 읽은 건 또 많이 읽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다. 첫 번째 책은 <상실의 시대>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책을 모두 읽은 후, 그 알 수 없는 ‘뿌염’으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이러했던 것 같다. 대학시절 주인공과 주위의 인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어느 날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 같기도 했던 이 책을 읽었던 당시 나도 대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찬사를 받은 그 소설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공감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당시에는 아직 그 알 수 없는 ‘뿌염’의 상태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2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하루키를 만났다. 남산 도서관의 문학실 한켠에 그가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고양이를 버리다 >, <1Q84>, <기사단장 죽이기>, <해변의 카프카>, <일인칭단수>를 내세워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고개를 돌리고 있던 사이, 참으로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책장 앞에 서서 제목을 찬찬히 눈에 담았다. 모두 읽고 싶은 이야기이었다. 그러나 그중 유독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 있었다. <일인칭단수>. 얇고 딱딱한 양장본에 하루키처럼 디자인도 간결했다.


책을 집어, 엄지로 지탱하고 휘리릭 책장을 튕기며 책 속을 살폈다. 어떤 내용인지 단 번에 알 수는 없었지만 재빨리 넘어가는 책장 사이로  하루키 특유의 단어들이 공기 중으로 튕기는 듯했다. ‘일인칭이라…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인가?’ 독특한 제목과 얼핏 봐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단어들 그리고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는 약간의 호기심을 더해 책을 빌렸다. 예전만큼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일인칭단수> First Person Singular는 2020년 작이다. 이 책을 쓴 시점은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때나 혹은 바로 이전이었겠다. 그의 나이 70세에 쓴 글이다.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의 문체는 한결같았다. 무심하고 간결하나, 구체적이고 세심하다. 나이 듦이 오히려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은 8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돌베개에, 크림,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야큐르트 스왈로스 시집, 사육제,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일인칭 단수.


소설 한 편 한 편이 모두 하루키 특유(이전에 책 한 권밖에 안 읽어 보았지만…)의 개인적인 회상이 드러나 있었다. 70이 넘은 그이지만 푸근한 필력이라기보다는 지금도 여전히 젊은 시절 그대로의 감성이 남아있었다. 장단점이 있겠으나, 장점이라면 그의 글은 여전히 변함없이 매력적이라는 점. 단점이라면 여전히 비슷한 느낌의 글을 쓴다는 것… 여전히 비슷한 느낌의 글을 써서 누가 봐도 이 글은 하루키의 글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브랜드로 형성되었으니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의 깔끔한 묘사 방식을 나도 좋아하기는 하니 말이다.


첫 번째, “돌베개에”라는 제목의 챕터에는 주인공이 대학교 2학년 때, 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만났던 이십 대 중반쯤 되었던 여성과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돌베개에서” 는 이 여성이 쓴 단카이다. 단카란 일본의 정형시이다. 우리나라에 시조가 있듯이 일본에도 비슷한 구조의 시가 있다. 그런데, 이 단카 속 글이 왠지 섬뜩하다. 일본 특유의 정서가 드러나 있는 것도 같은 것이 왠지 괴기하다… 

“돌베개에/ 귀 갖다내니/ 들리는 것은

흘린 피의/ 소리 없음. 없음”


아… 무섭기도 하고 순간 싸늘해지기도 한다. 죽음이 떠오르는 대목이라 또다시 사라진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느덧 나도 주인공처럼 그녀가 살아있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에서 말하는 원숭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SF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며, ‘아… 소설가는 역시 상상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들이구나..’하는 생각을 또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한 “일인칭 단수”에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나, 사회가 생각하는 나, 내가 생각하는 세상, 타인이 생각하는 나, 또 특정인이 생각하는 나…


우리는 나를 대할 때도 타인을 대할 때도, 또는 사회, 이 세상을 대할 때, 늘 특정 인간상, 사회상, 세계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렇고, 너는 이럴 것이고,  우리는 이럴 것이고, 이 세상은 이래야 하며 등등. 이 각각의 상이 나의 생각과 다르게 나타날 때 적지 않게 놀라기도 한다. 이 챕터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는 듯하다. 나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그저 일인칭 단수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뿐인데, 이인칭 혹은 삼인칭이 나의 세계에 뛰어들어 혼란을 일으키는 일. 그런 일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매번 일어나는 일이다. 오늘 나 또한 일인칭 단수로 걷다 이인칭을 만나고, 삼인칭을 만나며 나를 또 들여다보게 되었다.


책을 덮었으나 하루키가 보낸 이 묘한 감정을 떨칠 수 없었다. 책을 빌린 지 꽤 되었고, 반납일자가 훌쩍 지났음에도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처음부터 읽고 있다. 내일은 꼭 반납하기로 약속하며…

작가의 이전글 호기심의 밧줄 잡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