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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05. 2023

호기심의 밧줄 잡기


어떤 사람을 보면 즉시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그 사람에게서 뿜어 나오는 고유의 에너지 때문이다. 무심한 표정에도 선해 보이는 사람, 무언가에 집중해 있는 모습이 오히려 순수해 보이는 사람, 말하는 모습에서 강한 결의가 느껴지는 사람, 바라보는 시선에서 불안감이 느껴지는 사람 등등. 사람은 특유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1년이 훌쩍 넘었다. 요가와 명상 수련을 일정 기간 동안한 후 나는 그곳을 떠났다. 떠났다는 말이 왠지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겠는데, 다른 의미가 아니라 리탐빌에서 하던 수련을 그만했다는 말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고 변화를 좋아하기도 한다. 언제나 모든 면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예를 들면 평소에 듣고 싶었던 교육 과정이 있으면, 지켜보다 시의 적절할 때에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식이다. 명상은 홀로하기도 하고,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 하기도 하며 어느 정도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고 여겼다. 요가 대신 필라테스도 새로 배웠다. 어찌 됐든 운동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시간이 흐르고 필라테스도 그만하고 운동이라고는 산책만 하던 일상에 젖어있던 어느 날, 나는 허공에 떠있는 내가 보였다. 운동량이 부족해서일까. 명상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나를 가라앉히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마음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명상의 힘은 강력하다. 나에게 집중하게 되고, 공허한 마음이 금세 채워지는 효과가 있다. 극약 처방과 같다. 명상의 효과를 대신하는 방법은 사실 여러 가지다. 책을 읽거나, 짐에서 운동을 하거나, 법당에서 절을 하거나, 십자가를 한없이 바라보거나, 그저 걷거나… 소월길 아래 펼쳐져 있는 세상과 하늘바다를 보며 걷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이고, 남산으로 불쑥 들어가 초록과 한참을 대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센 것이 왔나 보다. 어떤 방법으로도 쉬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하기를 여러 날… 답답한 마음이 여전했던 그날  메시지가 도착했다. 명상 특강소식이었다.


특강을 해주는 지도자는 일본에서 활동하신단다. 이미 이름에서 향기가 난다.  O향 O. 이름에 향 자가 들어간 덕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좋은 향이 나는 사람, 향기로운 꽃향이 날 것 같기도 하고, 다양한 향이 날 것 같은 사람… 아무튼 그런 느낌이 드는 이름이다. 이름과 떠오르는 이미지를 안고 특강장으로 향했다. 


일요일 오후 처음 본 그녀의 얼굴은 첫눈에도 매우 평안해 보였다. 어떠한 들뜸도, 어떠한 불안도, 또는 어떠한 가벼움도 없었다. 그렇다고 심각하거나 무거운 모습도 아니다. 그저 평안해 보였다. 에고라는 들뜬 녀석이 잠시라도 자리할 순간이 없어 보이는 편안하고 매끄러운 얼굴이다. 연하게 지은 미소는 중립적이고 고요하면 선 해 보인다. 순간 ‘나도 저런 미소를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미소 때문이었을까. 홀은 고요하고 평안했다. 그곳으로 고개를 들이자 깃털처럼 가볍고 맑은 세계로 들어간 듯했다.


괴로움으로 점철된 어느 날 그녀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없다는 본능으로 포효를 했다 한다. 아이를 낳고, 산후 통증과 우울증을 앓던, 어느 날 일어난 일이 ‘포효’라 했다. 포효는 동물의 외침이다. 사자나 호랑이의 외침이다. 감정은 없었다고 한다. 가장 밑바닥에 있던 존재의 아우성은 그녀에게는 생존의 외침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녀는 절을 하기 시작했다. 백배, 이백배, 삼백배 그리고 어느 날부터 천배를 했다. 일요일에는 삼천배를 했다. 아픈 무릎과 손목은 절을 하고 오히려 통증이 나아졌단다. 나는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있어,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 근 삼백여 일간 천배를 하게 되었다 한다. 말로만 듣던 천배, 삼천배를 하는 사람을 지척에서 보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나도 백팔배를 백일간 한 적이 있다. 간절하면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천배라.. 백팔배를 삽심분간 한다고 가정한다면, 천배는 그 열 배의 시간이 든다고 봐야겠다. 그러니 다섯 시간 동안 절을 하는 것이다. 천배를 하는 사람이라 모습이 평온해 보이는 걸까. 


부드러운 표정으로 특강을 이어간 그녀의 이야기 중 나의 들뜬 마음을 붙잡은 포인트가 몇 가지 있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녀는 프레임을 벗고 그냥 호기심의 밧줄을 잡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기서 그냥 하기가 나온다. 뭐든 그냥 하기. 뭐든 호기심이 시키는 대로 그냥 하기. 호기심의 밧줄을 잡고 그냥 하기.

프레임을 벗는다는 말은 자유롭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전제이다.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특히 나는 이런 사람이고 그래서 그렇게 못하고,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고 저럴 것이고 등등. 스스로를 옥죄고 타인을 판단하는 프레임을 벗어버리자. 프레임은 겹겹이 쌓여있다. 한 번에 모든 것이 볏겨 지면 좋겠으나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나 보다. 결국 마음먹기 나름인데.. 나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나름 해왔으나, 여전히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해탈을 해야 가능한 일이 되지 않을까. 어찌 됐든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말이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과거의 나는 움직이지 않는 뻣뻣하고 딱딱해서 숨만 쉬던 존재로 느껴진다. 표정이 늘 어두웠었다. 이유는 삶이 괴로웠기 때문이었는데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스스로를 그렇게 방치해 두었던 것이니, 내 책임이기도 하다. 


호기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그녀는 호기심은 존재가 건네는 말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호기심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면 너무도 신이 나고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열정은 그 호기심으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밧줄은 존재가 던지는 것. 그 밧줄을 잡고 가면 좋은 일이 생기고 부와 행복이 따라온다는데 어찌 그 밧줄을 잡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그녀에게는 존재가 건네었던 밧줄이 절이었다고 한다. 백배, 이백배, 삼백배, 천배를 그냥 했다고, 신나서 했다고, 열정을 가지고 했다고 한다.


내가 질문했다. 

“호기심이 많으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그러면 산만해지지 않을까요? 어떤 호기심이 정말 존재가 하는 말인지 알 수 있나요?”


천배를 하라 한다. 그녀의 대답이었다. 절을 하다 보면 결국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상태가 온다. 그때 가장 밑바닥에서 슬금슬금 또는 갑자기 어느 순간 존재가 말을 걸어온다고 한다. 몸의 감각이 깨어나고 직관력이 생긴다는 것. 그때 존재가 건네는 그 호기심 섞인 말이 우리가 잡아야 할 부와 행복으로 향하는 보장된 밧줄이라는 것.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결국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관한 진리는 한 점으로 귀결되는 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알기 위해서는 끝없이 질문하고 답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 지금 현재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천배를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몸의 감각을 깨우고 직관력을 높이는 일이라면 꼭 천배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육체활동이어도 좋다는 생각이다. 또한 꼭 천배를 하지 않아도 질문을 계속하는 자에게 답은 언젠가 주어지지 않을까.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는 것이니, 두드리고 두드리면 문은 언제 가는 열리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두드려서 존재가 말하는 호기심의 밧줄을 발견했다면 그냥 따라가기가 그다음으로 할 일이겠다. 실천하기. 호기심을 발견하는 것에만 그치면 진심을 다하지 않은 것과 같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호기심의 밧줄을 잡고 그냥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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