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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12. 2023

남산의 요새



그랜드 하얏트 호텔을 방문했다. 보스가 떠나고 며칠 만이다. 자주 가는 곳이라 특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오늘은 뭔가가 조금 다르다. 저녁 즈음이면 켜져야 할 입구 산책로의 조명과 객실룸의 대부분의 조명이 꺼져있다. 덕분에 깜깜한 거대한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요새가 따로 없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하고 회전문을 지나 실내로 들어서는 순간 들리는 음악. Calling You.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주제곡이다. 딱이다. 왠지 오늘의 분위기와 바로 맞는 음악이랄까.


이곳 하얏트 호텔의 특색이라면 라운지 카페에 매일밤 라이브 음악이 퍼진다는 점이다. 외국인 대여섯 명이 한 조가 되어 노래하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공연을 한다. 몇십 분 동안 공연을 하고 잠시 쉬고 다시 공연을 하고 쉬는 횟수가 몇 번 반복되는 데, 쉬는 시간에 이렇게 녹음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 막간의 시간에 내가 도착한 모양이다. 아무튼 이상하리만큼 특별한 분위기와 음악 덕분에 오래전에 본 바그다드 카페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간다.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는 매우 비현실적인 곳에 비현실적으로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홀로 있는 카페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에서 여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이 카페에서 매직쇼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장면이 있었다. 어찌나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이던지… 나의 지루한 일상도 그곳에 가면 희망과 설렘으로 충만할 듯했다. 영화이니 가능한 일이겠으나 현실에 있던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동경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몇 년 후에 캐나다에 갔고, 그곳에 지내며 바그다드 카페와 비슷한 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메리카 대륙은 실로 넓디넓었다.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려면 승용차로 6-7시간을 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사이에 잠깐씩 기름을 넣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유소가 있고, 영화에서 처럼 모텔과 카페가 외진 곳에 덩그러니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손님들은 모두 어디론가 가는 여행자들이다.


하얏트 호텔이 오늘따라 바그다드 카페로 느껴지는 이유는 노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곳도 여행객들이 오가는 곳이라 그런 듯하다. 사실 얼마 전부터 나는 이곳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호텔 로비를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못처럼 서있는 내가 보였다. 나는 정지해 있고 세상은 빠르게 돌아갔다. 투숙객들은 비즈니스 미팅이 있거나, 국제 세미나가 있거나, 지인을 방문하거나, 그도 아니면 순전히 여행의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겠다. 아무튼 그들은 비즈니스로 바쁘든 여행으로 바쁘든 나와는 다르게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잠시 후 Calling You가 끝나고 라이브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잠시 쉬는 동안 목소리를 잘 가다듬었는지 차분했던 호텔 분위기가 다시 신이 난 듯 살아난다. 무심히 지나가는 여행객들도 잠깐씩 멈추어 공연을 감상하다 가던 길을 가곤 한다. 그들이 찾는 바그다드 카페는 어떤 곳일까. 어딘가 있을 그 카페가 오늘은 이곳 서울의 하얏트 호텔이 아닐까. 깜깜한 산책로를 지나 요새처럼 덩그러니 서있는 건물. 그 안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영화 속 여주인공의 마술쇼가 기다려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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