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Sep 13. 2023

이태원역 1번 출구

T를 만나러 이태원역으로 향했다. 오후 2시 30분. 애매한 시간이라 같이 식사를 할지, 차를 마실지 애매한 시간이다. 그럴 땐 만만한 게 1번 출구이다. 녹사평역 쪽에서 천천히 약속 장소로 가는 데, 중심거리가 눈에 띄게 변하는 모습이다. 문을 닫은 상점들도 많고, 아예 이참에 레노베이션을 하는 곳도 있고, 언제 세워졌는지 모를 건물들도 눈에 들어왔다. 코로나와 이태원 참사를 겪은 후이다. 침체된 상권이 여전히 더디게 회복하는 중인 듯하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해밀턴 셔츠, 리 주얼리, 나이키 매장 등, 몇몇 오래전부터 이 거리를 지켜 주는 추억의 장소가 있다. 아마 이태원이 다시 예전처럼, 혹은 더 나은 공간으로 바뀌길 고대하고 있지 않을까.


T가 한국에 온 지는 벌써 4개월이 지나간다. 인턴쉽 기회가 있어 지난해에 한국에 왔다가 프랑스로 잠시 돌아간 뒤 여자친구와 한국으로 돌아왔다.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 미스터리지만, 한국이 문화 강국임에는 틀림없다. 한국말을 배우는 프랑스인도 많고, 한국 영화, 드라마나 K-pop 가수들을 나보다 더 잘하는 프랑스 청년들도 수두룩하다. 


10여 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서울의 한 국제행사에 프랑스 십 대들이 방청객으로 대거 참석한 일이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한국드라마를 사랑하는 친구들이라고 한다. 해외에서 박찬욱 감독, 김기독 감독과 같은 영화감독들을 잘 알려져 있었지만 한국 드라마라니..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당시 역 문화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본 지 오래되어서 오히려 한국 유명배우를 잘 알지 못하는 나에 반해, 프랑스 청년들은 팬심 하나로 머나먼 한국을 방문까지 한 것이었다. 이런 일은 그 이후로도 본 적이 있는데, 내가 상하이에 있을 때였다. 한 중국인 친구가 ‘신화’라는 그룹의 멤버인 누구의 팬이라며 나에게 그를 아느냐고 물어왔다. 내가 해외에 있을 때 왕성히 활동한 그룹 같았다. 그룹의 이름을 들어는 봤지만 음악이나 그 멤버를 누군지 모르겠다며 답을 했다. 그녀는 왠지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하게 웃으며 조만간 그들의 공연을 보고 한국으로 간다는 것이다. 당시 그녀는 마치 이 생에 바라던 소원이 모두 완벽히 이루어진 사람처럼 행복해 겨운 듯 두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아이와 같은 해맑은 미소와 함께. 어느새 한국이 문화 강국이 된 것은 틀림없나 보다.


그에 반해 T는 한국에 문화보다는 여자친구 때문에 온 격이다. 프랑스는 한국과 워킹할러데이 교환 정책이 잘 되어있다. 덕분에 T처럼 1년 동안 일을 하고, 여행을 하는 기회가 많은 청년들에게 제공이 된다. 문제는 경제활동을 할 시간이 한정되어 있어,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풀타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디지털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잘하는 전문가이지만 그도 이런 법의 제도 앞에서 어쩔 도리가 없어 보였다.


어딜 가나 취업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취업이 잘되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쓴맛을 많이 보는 듯하다. 최고의 능력이 있어도 회사에게 고용을 해야 취업이 되는 것이니… 쉬운 일은 어딜 가나 없는 건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왠지 그가 의기소침해 보이기도 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많다. 단순히 여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며 한국을 실제로 경험하고자 하는 친구들이다. 유독 프랑스인들이 많아 놀랐는데 그들이 한국에서 좀 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렇게 작은 국가가 세계적인 문화강국이 된 이유는 당연히 좋은 콘텐츠가 있었지만, 한국의 문화와 함께 호흡할 수 있었던 외국 팬심이 덕이 아닐까. 이 작은 국가를 체험하기 위해 오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기대에 부흥하는 체험을 할 수 있기를, 그래서 한국이 해외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글로벌한 문화를 오픈 마인드로 잘 가꾸길…

이태원역 1번 출구와 같이 외국인을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처럼 한국이 더더욱 열린 공간으로 거듭나길…

작가의 이전글 남산의 요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