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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16. 2023

민 낯

나의 민 낯을 찾아다녔다.  일 년간 매우 열심히 그리고 매우 적극적으로. 민 낯을 찾는 일은 결국 수많은 나의 모습과 내 안에서 숨어져 있던 나를 온 세상에 공개적으로 선보이는 일과 같았다. 대인관계에서 삐걱거리는 나를 보았다. 경제적인 능력의 현주소를 보게 되었다. 나를 형성하는 수많은 자아들과 대화하게 되었다. 


대인관계에서 미성숙한 내가 훤히 보였다. 누구보다 어른스러울 것 같고, 누구보다 이해심이 넓어야 했던 나는 없었다. 있는 그대로 나의 감정을 허용하고 있는 올라오는 감정을 쏟아내고, 그러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참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을 테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낙인이 찍혔을 수도 있다. 그런 인간이 나라는 사실을 대중에게 공표하는 이러한 일들이 부끄러웠지만 후련했다. 나는 조용하기만 하고 의견이 없는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머릿속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넣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어리숙한 내 모습이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왜 그렇게 밖에 말을 못 하는지, 왜 그렇게 밖에 행동을 못하는지 참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그 어리석은 어린아이 같은 내 모습이 결국 나의 모습이 이었다. 말을 명료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의견을 명확히 표출하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영역의 일을 그들은 왜 그리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건지, 나는 왜 그들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는지…


일적으로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일도 인간관계이다. 전문적인 일의 영역에서 그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자면 역시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였다. 관계를 잘 형성하는 사람들에게는 타인을 끌어당기는 신뢰감이 있었다. 나는 그 신뢰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일을 잘하면 신뢰가 생길까? 물론 그럴 수 있다. 신속하게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연봉이 높고 회사의 입장에서는 신뢰감이 있는 사람일 테니.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일은 역시나 사람이 하는 일이고 모든 단계에서 사람의 손이 가는 영역이 이었다. 이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 사람과의 관계이다. 직장 내에서의 관계, 직장 밖에서의 관계. 


일적인 영역에서의 관계뿐만이 아니다. 어딜 가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관계를 해야 하는 존재이다. 내가 하는 관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그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하고 살고 있나? 나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기나 하는 걸까? 내가 주는 도움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혹은 나는 어찌 됐든 도움이 되는 존재이기는 한 걸까?


관계에 있어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았다. 가장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라는 말은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그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어려운 인간관계라면 굳이 함께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쉽게 단정 지었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고, 그 속에서 여러 이야기들이 생성됨을 경험하며 나는 착각하고 있었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이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그러함을 알았다. 직장을 다니며 매일 봐야 하는 상사를 피할 수도 없고, 공통의 사람들과 얽혀있는 지인관의 관계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 이런저런 상황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환경과 상대를 조정할 수 없을 때.


환경을 조정하려면 그 환경에서 벗어나면 된다. 생존과 직결된 직장이라면 쉽지 않다. 상대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상대는 내가 아니니 말이다.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바뀌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전적으로 상대의 선택이다.


나는 좌충우돌하는 나 자신을 면밀히 관찰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은 처참했다. 나는 내가 참 부끄러우면서도 그런 나의 모습을 인정했다. 미성숙한 내가 이제야 비로소 성숙해질 수 있는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나의 여러 가지를 수정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겼다. 수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일이었다. 억지로 나를 억누르며 하는 과제가 아니라 나를 인정하고, 그런 나의 모습을 매 순간 인정하고 사랑하며 하는 과제이다. 나를 업신여김으로 하는 과제가 아니라 나를 존중하며 하는 과제이다. 나의 민낯이 기질적으로 타고난 것이든 환경에 의한 것이든, 기쁜 일은 나는 나의 민 낯을 세상에 알린 능력 자니까. 나의 민 낯은 세상 속에 있는 나의 현실이었다. 나는 이제 이 현실을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내 민 낯에 찬란하고 따듯한 빛이 넘치는 그날까지 수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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