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Apr 11. 2023

허니버터칩

4.11. 허니버터칩


허니버터칩을 순삭 했다. 충동이 이겼다. 도서관으로 올라오는 중 어떤 여자분을 본 순간부터였다. 오후인데도 뿌연 안개가 낀 것처럼 축축한 날이다. 정오에 전깃줄에 일렬로 열린 물방울 꽃을 본듯한데, 그 영향 때문인가 보다. 남산 숲은 마치 태초의 고요를 품은 듯 아득하고 평화롭다. 그때다. 한 여인이 무언가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먹으며 내려온다. 푹 눌러쓴 모자에 가려진 얼굴은 잘 보이지 않으나 맛있는 소리는 그녀의 입을 통해 즐겁게 노래를 한다. 

바삭바삭 샥샥샥

으아..! 듣지 말아야 할 소리를 들어버렸다. 고개를 돌렸어야 했는데 보고야 말았다. 웅장 달콤 샤르르 한 소리와 그녀의 가려진 얼굴에서 뿜어 나오는 후광! 

도서관에 글을 쓰러 가는 길인데, 그 사이 뭔가 할 일이 생겼다. 사실 이 끊어지지 않는 충동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그때마다 나를 달랬다. 

‘건강에 좋지 않아, 차라리 차를 마시자.’

‘조금만 참자, 그것보다 차라리 연어를 먹자.’

무언가를 대체하고 나를 달랬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냥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고 갔다. 도서관 매점을 빠르게 스캔했다. 

‘내가 방금 본 게 어디에 있지? 좀 찾아보자.’

아하! 

살 것은 이것저것 참 많았다. 나는 불쑥 행복한 마음이 들어 나에게 말했다.

“그래, 며칠 참은 것 같은데, 대견한 나한테 이 정도는 괜찮지. 안 그래?‘ 허니 버터칩을 집어 들고, 옆에 있는 초콜렛도 집었다. 통당 폴리페롤 1420 mg이 함유되어 있단다. 폴리페롤이 어디에 좋으니 이름도 폴리페롤로 큼직하게 써 놓았을 것이다. 허니 버터칩과 카카오 함유 82% 폴리페롤 1420을 들고는 그래도 마음을 달래며 돈을 지불했다. 이내 가방을 던지다시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허니버터 칩은 자신의 운명을 다하고야 말았다. 안타깝다. 허니버터칩말고 내가.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그랬던 사실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덩그러리 빈 과자봉투를 남긴 내가 안타깝다. 천상의 시간이 지나자 기쁜 마음도 잠시.

‘아... 그걸 못 참다니... 정말 어쩌려고’

늘어나는 뱃살과 왠지 덜 건강해진 내가 눈앞에 선하다.


그것과 더불어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어 결국 책상에 앉자마다 흐릿해진 앞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잠을 자버렸다. 도서관에서의 잠은 보통 10분이면 충분할 텐데... 30분이 지났을까? 어떤 규칙적인 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점점 더 자고 있는 나를 성가시게 한다. 꿈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찰나 ‘나는 자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런! 나는 지금 잠을 자고 있었지? 오 마이갓! 지금 몇 시지?’

잠자다 소음에 부득이하게 잠을 깨니 정신은 여전히 혼미하다. 

‘아...! 30분이 훌쩍 지났구나!, 이건 무슨 소리? 사서가 책을 정리하는 소리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괜스레 이 고요한 공간에서 홀로 소리칠 자격이 있는 사서가 부러워졌다.

“탁 탁 탁!”

소리는 질서 있고 명쾌하니 이 뿌연 오후에 기분마저 신선하다.

당분간 허니버터칩은 안녕! 덕분에 사서의 외침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글을 좀 써야겠다.

먹자마자 졸음은 오는 칩은 그만 주입하기로. 흑!

작가의 이전글 춘곤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