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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20. 2023

시계

몇 년 만에 시계에 밥을 줬다. 서랍 안에 방치되어 있었다. 몇 년 동안. 아마 5년은 넘은 듯하다. 마지막으로 시계침이 언제 움직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짐을 옮기면서 데리고 온 시계들이 하나같이 멈추어 있었다. 몇 년이 지나 무슨 생각인지 어제 시계방을 찾았다. 시계수리를 전문적으로 잘하는 곳 같아 약간의 기대는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오래전에 작동이 멈춘 시계라 밥을 줘도 안되면 그만 버려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멈춘 시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시계가 움직인다. 아주 잘. 수리점에서는 친절하게 설명도 해주었다. 약간의 습기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작동이 잘되니 지켜보고 멈추면 다시 오라고 한다. 고쳐주겠다며… 아! 아직 생명이 끝나지 않은 녀석을 버리려고 했다. 시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두 개를 가지고 갔는데 두 개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간다. 


몇 년 동안 멈춰있던 시계에게 다시 고개를 돌린 건 얼마 전이다. 뭔가 하나씩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에너지가 조금씩 올라와서이지 않을까. 다시 걷기 시작하고, 짐에 등록을 하고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영양제를 다시 먹기 시작하고, 절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에너지가 요즘 조금씩 올라오는 듯하다. 나는 최근까지 배터리가 완전히 소진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계처럼 나도 아직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 나를 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시계방 주인은 젊은 청년이었다. 지하철 1번 출구 앞에 비스듬하게 있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갔다. 왼쪽에는 벽에 닿아있는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고, 그 앞 가장자리에 손님들을 위한 키 큰 선풍기가 있었다. 선풍기 날개에 먼지가 사뿐히 내려앉은 것을 보니 올 여름 열심히 돌아간 모양이다. 

정면에는 유리 장식장이 가로로 진열되어 있다. 진열장 안에는 꽤 비싼 시계들이 보인다. 롤렉스, 오메가, 등등. 청년이 수리한 시계들인걸까. 입구에 명품시계 수리점이라는 푯말이 있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푯말 덕분인지 방문하기도 전부터 왠지 신뢰가 갔다. 이곳에는 왠지 멈춰있는 내 시계를 움직이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은 멜빵 바지에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셔츠의 팔이 걷어진 걸 보니 일을 진중히 그리고 열심히 할 것 같은 모습니다.


시계를 건네고 기다리며 고개 숙여 일하는 청년의 모습을 힐긋 보았다. 전체적인 이미지도 그렇지만 특이한 헤어스타일때문이기도 했다. 참 특이한 스타이일인데… 내가 잘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처음 보는 머리모양이라.. 일단 양 옆 관자놀이부터 귀 아래가지 머리가 짧게 쳐져 있다. '바리깡' 또는 이발기의 단계를 알지 못해서 설명하기 조금 힘들지만, 아마 머리 길이가 0.3 센티미터 정도나 더 짧지 않을까. 그리고 그 위로 살포시 매우 잘 정돈된 머리가 까만 생크림처럼 정수리 위에 놓여 있는데… 나는 그 부분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저 머리를 하려면 저 이는 아침에 얼마의 시간을 투자할까?’ 혼자 상상을 해보았다. 2:8로 나눠진 머리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그렇지는 않다. 그저 양 옆머리가 짧게 쳐져 있었고, 가운데가 잘 퍼진 그러나 모든 모서리가 동그랗고 부드러운 크림의 형상이다. 낮게 눕혀져 있으나 아주 납작하지는 않은 머리를 잘 연출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매우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하며 유닉한 헤어스타일이었다.


‘저런 스타일링은 어디서 배운 걸까?’

요즘 바버샾이 유행이라 어느 바버의 솜씨이기도 하겠다.

아무튼 시계방 청년의 스타일은 유닉 그 자체였다. 주인처럼 시계수리점도 작으나 독특한 인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장소를 발견해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영화 속 한 시계수리점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혼자 상상해보기도 한다.


청년은 매우 전문가적인 멘트도 잊지 않았다.


“손님, 혹시 시계가 가다가 멈추면 가지고 오세요. 제가 고쳐드릴게요.”

‘오!’ 이런 멘트 좋다. 뭐든 고쳐줄 듯한 확신에 찬 목소리와 코멘트…!


시계방 청년 덕에 몇 년간 희망이 없어 보였던 시계가 잘 움직이고 있다. 지금까지 시간은 정확히 잘 가고 있다. 멈춰있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나도 이제 움직일 때가 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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