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플러 Miyoung Sep 20. 2023

새벽 생각

새벽에 눈을 뜨고 곰곰이 생각했다. 늘 하는 패턴이다. 나에게 이 시간은 명상과도 같다. 오늘 할 일과 내가 원하는 모습,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뭔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인지 생각을 하게된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타이밍도 그렇게 딱 맞았는지, 나의 습관을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나의 존재상으로 가기위한 시스템을 장착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역행자>에서도 나오고, 모든 자기계발서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고나오는 말이 있다. ‘습관‘, 좋은 습관으로 하루를 채우고 한달을 채우고 일년을 채우고 몇 년을 채우면 결국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나는 왜 이걸 이제야 알았을까? 3년 전부터 의식적으로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기위해 매일 노력했다. 물론 몸적 에너지가 고갈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질때도 있지만 그때도 생각을 하고 책을 읽고, 또는 읽으려 노력하고, 글을 써내려갔다. 또는 오늘처럼 매일 눈을 뜨자마자 골똘히 이것저것을 생각했다. 과거 아무 생각없이 살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던 것에 비하면 괄약할만한 성장을 하긴 한 것이다. 과거 내가 계속 책을 읽었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비슷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살아있으므로 보지 못했을 세상을,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예전에 누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마 티비 연속극을 통해 들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 생각을 했다. 별반응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생각해 보게 되는 말이었다.


‘정말 죽은 사람만 불쌍한 걸까? 산사람은 고통의 나날을 살면서 겪는데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죽음을 생각하게 되자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어릴적 죽음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한 적이 있다. 죽으면 사라지는 육체는 이해하겠는데, 정신은 어떻게 될까? 골똘히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정신도 사라질 거라는 것. 뉴런에의한 화학작용으로 일어나는 전기에너지를 통해 생각하고 사색하고 느끼고 등등을 하고 있는 인간일 뿐이니 몸이 사라지고 뇌가 없어지면 정신도 없어지고 영혼도 사라질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당시 나의 기준에서 죽음은 그저 생물학적으로 더 이상 숨을 쉬고 살지않는 물체로 변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니 천국과 지옥이 참 시시하게 느껴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역사적으로 오랜시간에 걸쳐 쓰여진 종교적인 책과 미신적인 말들도 다 쓸데없는 말장난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허무해졌었던 것 같다, 살아가는 게. 그래, 그게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 진지하게 죽음을 파헤치다 내린 결론으로 나는 참 오랫동안 허무함을 내재한 채 살아왔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도 우울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당시 그 우울감이란 공부를 해서 뭐하냐는 것이었다. 아마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나자마자 반 편성 시험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받아들은 수학과 영어 시험지는 내가 중학교를 다니면서 배웠던 것은 10퍼센트 정도만 나오고 모든게 새로운 정보였었던 것 같다. 배우지 않았으니 당연히 알 리가 없었던 시험지를 가득 메웠던 질문들... 나는 어떤 게 내가 아는 건지 또 어떤게 내가 모르는 건지를 구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뭔가를 열심히 풀고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좋은 성적으로 가서 특별한 대우를 받을 줄 알았던 나는 특별 비슷한 대우는커녕 나머지반에 배치되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참고로 나머지 반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다). 일반반에 배치되고 사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럴려고 이 학교에 온게 아닌데..!’


시골에서 온 내가 정말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그곳에 갔었던 거다. 돈많은 아이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인줄 알았다면, 방학동안 과외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있는 곳인줄 알았다면, 아마도 그곳으로 가지 않았을 건데... 시험지에 빽빽이 차있는 알지못하는 문제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3년간의 사립학교 생활에서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창밖만 바라보거나, 자거나 했다. 그래도 평생의 친구를 만난 건 참 행운이었다. 어디에나 나쁜 상황과 불행한 일만 있는 게 아니고, 또 어디서나 행복한 상황과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듯 말이다. 그때 허무해했지만 죽지 않은 건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쨌든 자아 존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