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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23. 2023

해방촌에서 과자 먹기

길을 걸으며 과자를 먹는다. 부러 그런다. 왠지 모를 해방감과 자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해방촌 초입에 있는 비건 식품점에 들러 과자를 산다. 감자칩이나, 코코너 칩을 좋아한다.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 그러면 기분이 좋아진다. 계산을 하고 과자 봉투를 뜯어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과자 봉투를 들고 해방촌 길을 걸으며 왼쪽과 오른쪽에 있는 카페나 레스토랑들을 구경한다. 안에서 일어나는 풍경들을 보며 걷는 재미가 있다. 코코낫칩으로 끈적이는 손가락을 비비기도하고 감자칩에서 묻어나는 소금과 과자 부스러기를 공중으로 털어내기도 한다. 그러다 앞에 행인이 나타나면 잠시 먹는 행위를 그만하고, 또 행인이 사라지면 다시 과자를 먹는 식이다. 매우 재미있다. 나처럼 해본 사람만이 이런 즐거움을 알 텐데… 


사람들은 어쩌면 이 사소한 것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도, 또는 비도덕이나 비위생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길에서 과자를 먹으면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을 테니.


내가 어릴 적에도 그랬다. 길에서 먹는 사람은 거지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니까… 한 번은 학교 앞에서 산 과자 봉투를 참지 못하고 뜯었다. 꿀 꽈배기였나. 하나를 집어 먹었는데, 그 맛이 천상의 맛이었다면 과장된 걸까. 하하하. 

하교하는 길에 먹었던 꿀꽈배기맛은 말 그래도 정말 꿀맛이었다.


하나를 먹고 나니,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손이 자연스레 봉투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갈등이 있었다. ‘먹어야 하나? 길에서 먹으면 안 된다고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때마침 아무도 없었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하고 두 번째 꽈배기를 먹었다. 또 맛있었다. 세 번째, 네 번째 꽈배기도 역시나 꿀맛이었다. 바삭바삭 부서지는 과자소리는 부드러운면서도 신나는 오케스라라 음악처럼 들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왼 손에는 과자봉투를, 오른손에는 과자를 하나씩 들고는 입을 오물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코너에서 한 어른이 모퉁이를 돌아 앞으로 걸어오는 게 아닌가. 순간 얼어버린 내가 애써 태연한 척 아무 일 없는 듯, 재빨리 과자 봉투를 접어 뒤로 숨겼다. 그런 장면을 모두 본 모양이다. 어르신이 내 앞에 다다르자 한마디 하신다.

“길에서 먹으면 안 되는 거 알고 있지, 공주님?”

“네? 네에...”

8살 어린 공주는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듯 금세 풀이 죽었다. 그리고 과자는 더 이상 맛이 없었다.


그날 일은 꽤 오랫동안 내 뇌리에 각인되어 그 뒤로 길에서 과자를 먹었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 캐나다의 한 지하철 안에서 놀라운 장면을 보았을 때, 어릴 적 기억이 오버랩되었다. 테이크아웃 문화가 일상인 캐나다에서 샌드위치나 쿠키, 커피등을 길에서 먹는 사람이 간혹 있기는 하다. 특히 커피는 오래전부터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번은 놀랍게도 그 무엇도 아닌 베트남 쌀국수를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지하철 열차 안에서. 그녀는 정말 배가 고팠던 걸까? 얼마나 맛나게 먹던지 사람들의 눈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먹는 것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간단한 쿠기나 머핀 정도는 이해하겠는데, 국물이 흥건한 쌀국수라니… 나만 놀란 게 아니었나 보다. 사람들은 모두 뭔가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본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열차 안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못 먹을 이유도 없지. 쌀국수나 커피나 그게 그거지 뭐.’


어릴 적 어르신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며, ‘길에서 못 먹을 것도 또 없지.’라며…


그때 이후로 한참 뒤. 몇 달 전부터 나는 길을 걸으며 가끔 과자를 먹는다. 도덕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즐기는 스릴도 있고, 마치 청개구리가 되어 미지의 세계로 뛰어든 듯한 신나는 기분도 든다. 글쎄, 심리학자들은 아마 이런 나의 행동을 요리조리 분석하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괜찮다. 비건 식품점에서 샀으니 건강에는 그리 나쁘지 않으리라는 나름 합리적인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하며….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밤, 해방촌 길을 걸으며 과자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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