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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24. 2023

상하이

어떤 공간에 대한, 어떤 사건에 대한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건 내가 아직 그곳을 똑바로 볼 수 없기 때문일까? 몸을 돌려 바라보려 애를 써도 눈이 따라가지 않아서일까?

몸에 붙어있는 마음이 도대체 미동을 하지 않아서일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상하이가 나에게 그런 공간일까? 상하이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나에게 그런 경우일까? 상하이에 대한 글을 쓰려 근 일 년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이 문제일까? 잘 쓰려는 욕심 때문일까?

상하이는 나에게 특별한 도시이다. 햇수로 3년을 지냈던 곳이고,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1년 이상을 살았던 곳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상하이에 발을 들인 건 2010년 상하이 엑스포가 끝나갈 무렵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홍차오 공항에서 R이 살고 있는 곳으로 차로 이동하며 주위의 풍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밤이었다. 어느 도시를 가나 밤 풍경은 묘한 노스텔지어를 일으킨다. 처음 온 곳이지만 왠지 이미 아는 도시처럼 따듯한 황금색 조명으로 된 가로등, 건물, 도로. 풍경만 조금씩 다를 뿐 모든 색이 황금으로 바뀐 도시의 밤은 각각 비슷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고 집으로 향하는 듯한 차들의 노랗고 빨간 뒷모습이 익숙하다. 

R은 상하이의 어느 곳에 살았는데 그곳을 결정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바로 매일 성당에 가기 위해 그 옆에 위치한 집을 찾았다고 한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R은 필리핀에서 싱가포르로 넘어와 글로벌 제약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고 제법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인재이다. 그런데 그에게서는 회사의 주 임원으로서의 이미지보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속좋은 말을 하는 마음씨 착한 사람의 이미지가 뿜어나온다. 모든 일을 허허허 웃으면 넘기는 그가 그 치열한 회사생활을 견디고 살아남아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매일 얼마나 스스로를 단련했을까. 그랬던 그가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종교에 헌신하겠다고 했다. 

나의 상하이에 대한 추억은 이렇게 나의 지인인 R에서부터 시작된다. 더운 나라에서 온 그가 차갑고 건조한 칼바람이 제법 부는 더 번드에서 손을 비비며 말했다.

“제 손 좀 보세요. 아무리 크림을 발라도 나아지질 않아요. 너무 건조해서 피부가 갈라졌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가 내민 손을 보니 정말 피부가 쩍쩍 갈라져 껍질이 하얗게 일어나고 있었다.

“로션이나 핸드크림을 좀 발라봤어요?”

“네, 수시로 바릅니다. 그래도 이래요. 뭐가 문제일까요?”

파견되어 온 상하이의 건조하고 추운 겨울이 그에게 맞지 않았나 보다.

집에서 사용하는 난방도 에어컨처럼 생긴 기계가 전부였다. 

‘아...!, 저런 난방 시스템은 최악인데...’

안내해 준 방으로 들어가 기계를 조정하는 리모컨의 온 스위치를 켰다. 냉온풍 겸용인 그 기계에서 더운바람이 쉬지않고 쏟아져 나왔으나 실내 온도를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닥은 차가웠고 방안의 공기는 그저 답답하고 건조했다. 침대에 누워 두꺼운 이불을 힘껏 끌어당겨 머리까지 뒤집어써보아도 추위는 잘 가시지 않았다. 

내 손마저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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