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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24. 2023

상하이 2

내가 R을 처음 만난 근 20년 전 바르셀로나의 한 지하철역에서 였다. 도시 관광지도를 펴고 이곳 저곳을 살피고 있는 나에게 그가 인사했다. 그는 그때도 얼굴 가득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같은 여행자로, 같은 장소로 이동하는 내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캐나다에서 왔습니다. 한국사람이예요.”

“오, 그러시군요. 아직 캐나다도 한국도 한번도 안가봤는데, 꼭 가고보 싶네요. 지금 가는 곳은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라는 성당인데 100년 이상 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서 아직도 공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만 공개되고 있고, 여전히 공사하기 때문에 소음이 있을 수 있다네요.”


성당에 도착하니 이미 관광객들이 입구에서부터 길게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이 가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표족하고 길고 둥근 첨탑과 건물의 구석구석에 새겨진 건축물과 입체적인 조각들이 그때까지 본 성당들의 디자인과는 너무도 달라서 이상하고 괴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클래식컬한 조각상들 사이에 어디서 왔는지 출처 모를 매우 모던한 입체상이 덩그러니 나타나 나의 뇌리를 강열하게 때리며 존재감을 과시하곤 했다. 천주교의 일반적인 건축물일 것이라는 나의 고정적인 생각에 일침을 가하는 성당이었다. 

어느 곳 하나 직선이 없이 없이 자유롭고 이 세상의 모든 자연을 담고 있는 듯하면서도, 선과 악을 동시에 아우르는 듯한 이 건축물이 당시 나에겐 너무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감동과 실망이 동시에 올라오는 참 이상한 경험을 했다.


‘유네스코에 올랐다는 건물이 아직도 공사 중이라니... 완성품도 아닌데.. 너무 이른 판단이 아닐까?’

‘아..., 아무리 그래도 건축현장이 같은, 아니 실제로 건축이 여전히 진행되고, 여기저기 돌 두드리는 소음이 들리는 이곳이?..’

‘앗, 이건 뭐지? 아 가우디가 디자인을 이렇게 했구나.. ’ 뒤집어 놓은 첨탑의 입체 설계도를 보니, 세상을 이리저리 뒤집은 건축가의 머릿속이 상상이 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는 말그대로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었다. 언젠가는 완공이 되길 희망하며 매일 미세한 손작업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성당, 도시의 아파트, 공원도 그의 설계로 이루어진 건축물들이 많았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성당을 방문시작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구불구불 모든 것이 곡선으로 된 세상. 바다와 들, 산 그 속에 사는 생명체들. 그 하나하나의 존재들에게 보내는 따듯한 시선과 동행의 자세.  


인간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선생님같았다. 그의 건축물에 시선을 돌리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구불구불 일렁일렁 호흡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안을 걸으면 밖에서 들어오는 하얀빛과 크고 하얀 내부의 빈 공간이 어우러져 마치 내가 우주에 덩그러니 떠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천장 높이 올라 뻗어 올라간 나무모양의 기둥이, 그 끝에 펼쳐진 가지가 피워낸 꽃들이, 그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와 물고기, 벼와 과일이, 아기 천사의 노래에 맞춰 함께 즐거운 춤을 추는 듯하다. 간간히 들려오는 망치소리에 맞춰, 꽃의 장단에 맞춰,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하얀 공간과 그 안에 울려 펴지는 공기의 파장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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