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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플러 Miyoung Sep 24. 2023

2010년 혁명의 날

하늘이 뚫렸음이 틀림없다. 촘촘히 짜여진 마천의 미세한 대기층이 그때만큼은 여기저기 뚫려있는 두더지 구멍같았다. 순식간에 밀려오는 물줄기는 온세상을 향해 우루룽 우루룽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작기 가로수 밑으로, 건물의 처마 밑으로, 지하철로 입구로 뛰었다. 방금 전까지 하늘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거리의 퍼레이드를 구경하고, 하늘 속 삼색의 기체를 뿜어내는 비행기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붐비는 구경꾼들과 군악단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소리로 파리시는 그야말로 축제의 분위기였다. 급격하게 변한 하늘색으로 온 세상이 아수랑장이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빨간 우산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몸에 딱 떨어지는 회색정장에 뾰족한 밤색구두를 잘 갖춰입은 남성이 보였다. 파리지엥이다. 야무지게 펼친 빨간 일체형 우산을 들고 쏫아지는 빗속을 뛰어가는 모습이 마치 어느 무명화가의 ‘비오는 파리’라는 그림 속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었다.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은 우산의 표면에서, 아스팔트 지면에서 두두둑 방울방울 춤을 추고 있었다. 7월 14일, 혁명의 날이었다.


혁명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하기위한 이날은 온 나라가 축제의 분위기에 휩싸인다.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 눈에는 나라에 대한 애국심이 선하게 보인다. 수만가지 의견을 내보이며 각자의 생각을 정당화하려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는 그들이지만 이날만큼은 한목소리를 내는 듯 모두가 만장일치이다. 혁명에서 승리한 건 정말 완벽한 일이었음에 틀림없어 보인다. 


프랑스 국가는 군가이다. 군가가 국가에 되었음에 사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피묻은 깃발..., 전진 전진...’ 이런 가사들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 그래도 프랑스인들은 이 국가를 부르면 애국심이 절로 나오는 듯 다소 심각하고 용맹스러워지는 분위기다.


오늘 한 문장을 보고 떠오른 날이 있다. 사진처럼 늘 마음 속에 간직한 장면들이 하나둘씩 펼쳐진다. 그날 나는 매우 답답하고 초조한 상태에서 황당과 차분을 거쳐 초연해지는 상태로 바뀌었던 기억이 있다. 아침부터 샹젤리제 거리로 이동했다. 이미 도착한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임시로 쳐놓은 철제 가드에 접근하기란 쉽지않아 보였다. 양 옆으로 쳐진 가드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로 보였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진행되던 퍼레이드가 멈췄다. 하늘 속 비행기도 거리의 군악단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우리는 근처 카페의 처마로 모여 일행을 점검했다. 하나 둘 셋... 열하나. 엇! 열둘이어야하는데!

한 사람의 행방이 묘연했다. 주위를 둘러봐서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무리에서 이탈해서 다른 곳에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었다. 수중에 핸드폰도 없어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함께 걷던 사람이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음에 새삼 놀라웠다. 다행이 우리 일행 사람들이 찾았지만 그날의 기억은 나에게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빨간 우산의 파리지엥과 순식간에 사라졌던 일행도.


‘사람이 사라지는 건 이렇게 쉽구나‘를 체험한 순간이었다. 있음에서 없음을 경험한 날이었다. 없음에서 있음은 기대되고 흥분되지만 있음에서 없음의 감정은 허망하기 그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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