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전기 1
그는 항상 교실에 들어오면 맨 먼저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자기 자리로 갔다. 노는 무리 중의 대장 격인 녀석, 반질한 외모덕에 인기와 힘을 가지고 학교 생활을 즐겼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니 어쩌면 찐따에 가까운 학생이다. 그 녀석의 손이 내 머리를 스칠 때마다 내 온몸의 신경은 곤두서고 긴장하지만 그 녀석은 그걸 즐기기라도 하는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나친다.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뭣하고, 계속 이런 취급을 받자니 갑갑하고, 전학 가면 뭔가 달라질까 하는 상상을 하며 오늘도 지루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그 애가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너 오늘 끝나고 뭐 해?”
처음 겪는 상황에 벙찐 채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대답했다.
“별거 없는데?”
“그럼 나랑 어디 좀 갈래?”
“어디?”
“좋아할 거야, 4시에 학교 앞에서 봐”
“으응,, 그래”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린 나는 나에게 벌어질 앞으로의 미래는 생각지도 못한 채 멍하니 수업을 들었다.
방과 후 4시 20분 학교 앞.
온다더니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애들은 벌써 다들 하교하고 없었다. 그냥 장난친 건가 생각하며 집에 가려는 생각을 할 때쯤, 저 멀리서 반짝이는 사람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복 입으니까 딴 사람 같네,,’
“야 한승훈!”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4시까지라더니 왜 이렇게 늦었어!”
“하하,,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네? 미안”
생각보다 상냥한 말투에 마음은 이미 풀려버렸다.
“어디 가는데 그렇게 꾸미고 온 거야?”
“긴장하지 마, 별거 아니니깐”
그 순간 내 손을 잡으며 근처에 주차된 차로 걸어가는 녀석. 내 심장은 통제불능으로 뛰고 있었고 그 소리가 그에게까지 들리지 않을까 맘 졸이며 발을 옮겼다.
차는 BMW에 꽤나 새것 같아 보였고, 차에 있는 여러 가지 옵션들을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사이 한승훈은 운전자석에 탔고, 어딘가 네비에 찍혀있는 주소로 달렸다.
고등학생이 운전을 한다는 사실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꿈과 현실이 분간이 가지 않았다.
얼마 안 가 차는 목적지에 다다랐고, 그곳은 한 유명 카페의 체인점이었다.
‘이럴 거면 걸어오지 얼마나 먼데 온다고 똥폼은,, 쯧쯧”
내재돼 있던 꼰대력이 발동한 순간이었다. 조금 얼빠진 얼굴로 차에서 내리자 그는 다시 내 손을 잡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어 엄마!”
‘에 엄마?!’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로봇처럼 뚜벅뚜벅 걸어갔다.
앉아서 환한 얼굴로 그 애를 바라보던 곱상한 아주머니의 눈길이 차츰 동그래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얘가 내 여자친구야. 말했지 데려온다고?”
“정말이니? 사귄 지는 얼마나 됐고?”
나를 똑바로 보고 물어보는 아주머니에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한,, 한 달 정도 됐어요,,”
흡족해 보이는 그 녀석과는 달리 아주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생각보다는 오래 안 됐구나. 보아하니 놀거나 하진 않는 것 같고, 공부는 좀 하니?”
“아,, 네 그래도 반에서 5등에는 줄곳 들었어요.”
“그래 다 나중에 쓸모가 있는 거야. 잘하고 있구나.”
“사실은 이제 승훈이도 곧 성인이니까 마음이 급해져서 좋은 사람 소개 한번 시켜주려 했는데, 둘이 사귀고 있다니 그건 무리일 것 같네. 얘가 하도 능구렁이같이 거짓말을 잘해서 진짜면 한 번 데려와 보라고 했는데, 괜한 발걸음을 하게 했구나. 아줌마가 뭐 맛있는 거라도 사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아,, 아니요 저도 뵙고 싶었는걸요 하하 그냥 라테 한잔이면 될 것 같아요”
“난 녹차 프라푸치노” 거만하게 껌 씹으며
“에이그 너 또 얘기 안 하고 데려온 거지? 표정이 놀란 게 다 보인다. 잘 얘기하고 있어!”
“내가 말했지 별거 아니라고 큭큭 덕분에 라테도 공짜로 먹고 좋잖아”
“이따 나가서 보자 넌”
그렇게 어찌어찌 자리를 마무리하고 다시 그의 차에 올랐다.
“대체 이런 자리에 날 왜 데려온 거야? 그리고 여자친구는 또 뭐고”
“한 달 된 여자 친구 소개하러 온 건데 뭐”
“그건 놀라실까 봐 한 소리지. 너랑은 대화도 한번 해본 적도 없는데”
“이번 기회에 얘기도 해보고 좋지 않아?”
“그래도 이건 좀 심했지. 상황 설명이라도 해주던가”
“그럼 뭐가 달라져? 미리 말했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면서”
“…”
그건 사실이라 약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 사이 나를 바라보는 그 애의 눈을 보니 진심으로 자신이 한 일의 잘못을 모르겠다는 댕댕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 어차피 인기 많아서 데려갈 여자애들도 많고, 하필 왜 나 같은 애를 데려간 건데”
“너 같은 애가 뭔데, 공부 잘하고 착하고 머리도 맨날 감고 오고 큭큭”
“놀리냐, 난 예쁘지도 않고 인기도 없는데 왜-“
“그래서. 엄마가 그런 애들은 질색이거든.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나.”
“하여간 다신 이런 일로 불러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화났어? 난 너 오늘 별일 없는 줄 알고 그랬지.”
“별일 있었으면. 다른 인기 없고 못생긴 애 데려 갈려 그랬어?”
“못생겼다고 하진 않았다? 너 볼수록 귀여워”
그 순간 내 얼굴은 주체를 못 하고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잘생긴 걸 어쩌나.
“가지고 놀지 말라고 했어. 난 여기서 걸어갈게. 안녕”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내 손을 당기며 다시 자리에 앉히는 녀석.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빨개지는 게 귀엽네 큭큭 그래 내일 보자”
걸려있던 안전벨트를 풀어주며 재밌다는 웃음을 짓는 녀석을 뒤로 한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설마 안전벨트도 안 풀고 나가려고 했던 거냐, 강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