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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uvely May 01. 2024

안녕, 시간을 묻고 떠나는 날

과거는 과거일 뿐.

사계절이 두 바퀴를 돌았다.

예산에 맞는 매물이 없어서 반 강제로 계약을 했던 상황으로 날이 서 있었다.


어쩌다 만들어진 것인지 짐작도 안 되는 굴뚝같은 구멍으로 입장하는 반갑지 않은 날개들 등장이요.

시시때때로 꽃단장을 위해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불협화음은 옵션이다. 거나 더운 날은 스멀스멀 담배냄새가 잊을만하면 찾아다. 자취를 해본 적 없는 나로선 모든 게 불편했고, 부모님 품이 그리워졌다. 욜로로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미니멀 라이프로 이곳을 떠나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이 바로 내일이다.


초면이 아니라 초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때 할머니와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결혼은 했어?", "(화들짝 놀라며).. 네!" 블루투스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랐다. "럽네. 작년에 사별했어. 애들 스카이 대학 보내고 한놈은 삼성, 하나는 연구원 보내고 결혼까지 보냈는데 자식들 다 부질없어. 남편이랑 같이 사는 게 복이야" "아.. 예.."  예상하지 못한 대화주제에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한 식습관부터 하나씩 맞춰가는 과정 중 발생하는 피로감으로 할머니 이야기를 삼키지 못했다. 오늘은 유독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했지만 끝내 마주치지 못했다.








마침표를 찍게 도와준 귀인

다른 회사에서 어렵게 스카우트해 온 팀장님이 자리 잡으실 수 있도록 돕는 게 내게 주어진 과제였다. 팀을 개편해서 성장시킨 이력이 화려한 분으로 담소를 나누다 보면 내공에 감탄하게 된다. 감정변화를 알 수 없는 분 포커페이스로 직원들이 어려워한다. 내겐 한줄기 빛과도 같은 존재라 원들이 걸어오는 기싸움에 지지 않도록 업무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했고 그분 일까지 자처해서 도왔다. 진심은 통한다 했던가. 부서 이동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낌없이 주는 모습에 어느 순간부터 속얘기를 터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친해졌다. 내 것을 챙기려면 때론 힘들다는 말도 할 줄 알고, 본인이 쌓은 결과를 인지시키는 내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줬다.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에 속앓이 했던 순간들이 치유되는 순간이랄까. 멀리를 내다볼 줄 아는 여유와 상대를 장점을 빛나게 해주는 능력까지 본받고 싶은 게 많은 분이다. 인생 멘토랄까. 업무 경력은 비슷하지만 인생 경험치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가 자가를 마련하기까지 우여곡절을 듣다 보니 다들 이런 과정을 겪는구나 싶은 마음에 위로를 받았다. 이사 전날 퇴근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자리로 와서 슬쩍 무언가 놓고 가는 게 아닌가. 토끼눈을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내일 정신없을 거라며 요기라도 하면서 설렁설렁하라며 사라졌다. 무리해서 다 정리하려다 병난다는 말과 함께. 코찡한 감정으로 쇼핑백을 품에 안고 집으로 향했다. 


정든 집을 떠나려니 괜스레 뭉클했는데, 이별은 항상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새로운 집에서 설렘으로 상쇄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끝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좋은 추억이 될지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으로 될지 정해진다. 짐이 없는 텅 빈 집과의 이별은 슬픔과 아쉬움보다 좋았다는 단어로 마무리 짓고 나니 해가 잘 들어오는 베란다가 참 좋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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