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림에 대하여

주인으로서의 삶

by 강미정


기대했던 내 불혹은 유예되었다. 공자님 시대의 마흔을 기대하지는 않더라도, 나이에 4자가 붙으면 조금은 더 단단해질 줄 알았다. 흐트러진 부분들을 고르게 하고 마음의 질서를 세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았다.


30대의 마지막 달에 우리 부부는 서면의 도로 위에서 군중 속에 서 있었다. 빼앗겼다고 느낀 불편함과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함 사이에서 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불빛을 들었다. 그날의 경험은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안에서 권력 주체로서의 주체성을 확인시켜 주었지만, 정작 나 자신의 삶에서는 여전히 주인의 자리는 위태롭다. 나는 무엇을 향해 다시 불빛을 들어야 할까.


법구경심의품에는 마음은 가볍게 들 떠 걷잡을 수 없는 것, 오직 욕망을 따라간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훌륭한 일. 자신을 다스리면 편안해진다.’라는 구절이 있다. 다스린다는 것은 보살피고 돌보고 이끄는 행위이며, 어지러운 상태를 평온하게 바로잡는 것이다. 내게 이 다스림을 가장 끊임없이 배우게 하는 곳 중 하나가 교실일 것이다. 아이의 말에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 나의 감정이 올라왔을 때에도 그것을 누르고 아이의 의도를 먼저 읽어내려는 일, 몸과 마음의 피로를 버티기 힘든 날에도 학생 앞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일. 수업은 나를 다스리는 일의 연습이다.


하지만 긴 시간 강의를 해오면서 내가 수업 자체를 만들어 내고 교사로서의 나를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강사, 좋은 수업은 어떠하다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에 사로잡혀 보여주기 식의 수업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자주 느끼게 된다. 거실의 작은 공부방에서 교습소로, 그리고 몇 년 전 학원으로 공간의 변화를 겪어오면서 내가 아닌 교실의 크기만 키워 온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에 흔들리는 순간이 잦다.

보드리야르는 『소비사회』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물건의 쓸모를 소비하는 것이 아닌 ‘이미지와 의미’를 소비한다고 했다. 그리고 소비를 추동하는 욕구의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성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적합한 욕구만을 불러일으키는 ‘성장욕구’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나 또한 교실 안에서 ‘성실한 교사’, ‘단호한 어른’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소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더 나은 수업이 아니라 더 많은 ‘선택’을 받기 위한 전제를 두는 순간들이 분명있었기에 부끄럽기도 하다.


타인의 평가와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신념과 리듬이 살아 있는 일상을 살 수 있을 때,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나를 다스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필립파 페리는 《인생학교》4권 정신편에서 자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방법으로 ‘자기 관찰 훈련’과 ‘타인과의 관계 맺기’, ‘유익한 자극으로서의 스트레스’ , ‘자기 개인의 서사 알기’를 제시한다. 그 중 ‘자기관찰 훈련은 감정에 대한 통찰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다. 감정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외적 기준에만 휘둘리지 않고 내적 기준에 의한 내면적 경험을 이루게 만든다. 이로써 타인과 살아가며 반드시 신경 쓸 수 밖에 없는 외적 기준과, 내적 기준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나를 다스린다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러지지 않고 흔들리기 위한 유연한 내적 질서가 필요하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질서로 나를 이끌어 ‘보여주는 나’가 아니라 ‘살아 있는 나’로 돌아오는 길을 비추기 위한 불빛을 다시 들어야 한다.



[참고문헌]

(1) 법구지음, 한명숙 옮김, 2021. 《법구경》. 홍익. 35장 「심의품」 제 2장. 輕躁難持 惟欲是從 制意爲善 自調則寧

(2)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09, 《고려대한국어대사전》.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3) 장 보드리야르, 2015,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4) 필립파 페리, 2018, 《인생학교-4.정신》.샘엔파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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