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서평
같은 책 앞에서도 매번 나는 다른 독자가 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초등 5학년 때 어머니가 『좁은 문』과 함께 권해준 내 인생의 첫 세계 명작이다. 어린이판도 아니었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가는 단어도 맥락도 많았지만 큰 줄기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 과제나 수업 등으로 여러 차례 다시 만난 이 책은, 달라진 나를 발견하는 갈피가 되었다. 매번 이해와 감상에 차이나 진척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용이나 맥락, 표현에 대한 이해가 가장 명확하게 읽혔다. 아마 마지막으로 읽었을 때에 비해 배경지식이 쌓였고 내 독서력 또한 성장했으며, 그간의 과제나 수업 준비가 목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스터디라는 맥락 속에서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다양함을 다시금 깨닫는다. 아이들에게도 ‘무엇을’ 읽게 하느냐만이 아닌 누구와, 무엇을 위하여, 어떤 방식으로 언제, 어떤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읽히느냐에 따라 하나의 책이 수십가지의 독서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이번 독서에서는 단순히 ‘베르테르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고 그의 세밀한 감정선과 사회적 배경을 함께 보게 되었다. 특히 그가 읽는 책들이 눈에 들어와서 독서 속 독서에도 딥중하며 읽었다. 그렇게 읽어 내니 이 이야기는 베르테르라는 한 인간의 ‘내면과 외부 구조’가 충돌하는 치열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의 죽음이 누구의 책임일까를 고민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의 내 고민은 그의 슬픔은 누구의 책임인가였다. 휘몰아치는 책의 여운 속에서 몇가지 갈피를 잡아 인물, 구조와 소재, 사회적 맥락으로 크게 나누어 새로운 발견을 정리해본다.
먼저 베르테르는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다. 자기 감정에만 몰입하고 주변을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인물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이것도 사실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에 대한 애정일 수 있다. 귀족계급의 허영과 격식을 싫어하면서 자신은 보다 낮은 계층에게 격식을 두지 않는 인물임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아닐까하고 비판적으로 본 그의 호의와 선행도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세상과 감정에 대해 투명했고 삶에에 대한 감사와 여유와 상상력으로 가득 찬 남자이다. 구속과 격식을 싫어했으며 삶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 태도는 무척 매력적이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천진함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그는 어른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사회적 질서나 관계 속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말과 행동, 감정 표출을 하는 미숙함이 있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미숙함을 순수함으로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런 아량은 없다. 마치 사회화되지 않은 채 방치된 천진난만함이라 불쾌했고 아마 그 이유는 나 역시 그러한 부분이 있어서 그것을 없애고 싶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는 소설의 초반부에서 우울증을 의지와 행동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병이자, 게으름에 가까운 인간 내면의 나약함이며, 신의 은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정신의학이 제대로 있지 않던 시대에 우울증을 제대로 몰랐던 베르테르가 한 말이기에 감안하고 읽는다면 아마도 ‘부정적 감정은 타인에게 영향을 미친다. 감정이 있는 건 죄가 아니지만, 그것을 조절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모두를 무너뜨리게 된다. 그러니 의지를 가지고 감정을 조절해야 한다.’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베르테르는 이것이 되지 않음을 직접 보여준다. 촘촘히 읽으니 작가의 이러한 일종의 ‘빌드업’이 다시 보였고 매우 흥미로웠다.
로테는 이해는 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는 동생들의 어머니가 되기로 했다. 그리고 베르테르에게 까지 그 모성애를 펼친 것인가? 따뜻하게 대해주면서도 그 책임지지 못할 감정을 키우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그녀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당시 유럽의 사교 문화에 대한 더 많은 이해가 있었다면 나는 그녀를 다르게 읽었을지도 모른다. 베르테르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알아차리는 소설의 말미에서 안타까웠고 또 속시원했다. 그녀가 베르테르에게 마음이 없이 그런 태도를 취했다면 소설의 끝까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베르테르가 죽은 후 큰 죄책감에 시달릴 로테가 너무 가엽다.
알베르트는 이번 읽기에서 전혀 다른 인물로 다가왔다. 이전에는 이성적이고 건조한 인물로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따뜻함과 연민을 가진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베르테르를 무시하지 않았고 다정하고 차분하게 균형을 잡아주려 했으며 아내도 배려했다. 하지만 궁금하다 그는 과연 질투를 느끼지 않았는가? 이전 독서에서 안평대군의 마음이 궁금했듯이 이번 독서에서는 알베르트의 마음이 궁금하다. 불타는 질투를 숨겼다면 그것도 위선이나 가식일텐데 그렇다면 이 책에서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며 사는 것은 베르테르 뿐인 것이 된다. 그에 대한 대가가 참혹해 감정을 드러내며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곰곰히 하게 되었다.
인물뿐 아니라 구조적인 면도 이번에는 잘 파악이 되었다.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갈린다.(큰 공통점도 있는데 둘 다에서 베르테르는 줄곧 과잉감정 상태라는 것이다. 현대 의학이나 심리학으로 그를 분석한 자료가 궁금하다.) 1부는 베르테르의 사랑과 감정, 자연과 희망으로 가득 찬 서정적 시기다. 베르테르는 이 시기에 호메로스를 읽는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영웅의 서사, 질서, 웅장함이 담긴 고전으로 알고 있다. 1부의 베르테르가 삶과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의지를 가진 자였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부에서 그는 좌절, 고립, 파국을 향해 나아 가는데 이 때 그는 자신에게 호메로스가 차지하던 자리를 오시안(맥퍼슨의 서사시 주인공)이 대체했다 말한다. 마지막으로 로테를 만난 밤에도 본인이 직접 번역한 ‘오시안의 노래’라는 긴 서사시를 읽어주는 장면이 아주 인상깊었는데 너무 격정적인 분위기여서 발끝을 오므리고 긴장하며 읽어 낸 장면이다.
하나 나 또한 여위고 시들 때가 가까웠노라. 나의 잎사귀를 휘몰아 떨어뜨릴 비바람도 이제 가까웠느니라. 그 언젠가 내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던 나그네가 내일 찾아오리라. 그는 들판에서 내 모습을 찾겠지만, 끝내 나를 찾아내지는 못하리라.
이 마지막 구절에서 두 남녀의 감정은 통제되지 못하고 흘러넘쳤다. 이 부분에서 로테는 베르테르의 죽음으로 향한 결심을 눈치챌 수 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죽은 이들과 전사의 고독, 무덤과 절망으로 가득 찬 이 낭만주의적 시가 베르테르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그가 그만큼 절망과 좌절 속에서 무덤 속 평안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이 그의 자살을 정당화해주는 장치로 볼 수도 있다. 호메로스에서 맥퍼슨의 시로의 독서 변화는 단순한 취향 변화가 아니라, 베르테르 내면의 추락과 감정의 변질을 상징한다. 어떤 순간에 읽는 어떤 책. 한 사람을 이해하기에 그가 어떤 책을 읽고 영향을 받으며 어떤 책을 찾고 구하는지가 충분한 힘을 가진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베르테르를 선택한 것은 또한 어떤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지 고민해본다.
인물과 구조에 이어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사회적인 맥락이다. 이로써 자살을 선택한 것이 이해되었다. 이전의 독서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한 선택으로서는 동기가 약하다고 느껴졌었다. 2부의 무도회 사건은 이 작품에서 가장 슬프고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C백작은 베르테르를 좋아해 상류츨들이 참석하는 파티에 그를 초대했지만 사회의 규칙은 그를 거부했다. 귀족 사회의 규범은 개인의 호의보다 강했고 베르테르는 초대받은 손님이면서도 배척당하는 아이러니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 사건은 그가 사랑뿐만이 아니라, 사회와 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일을 잘 못하거나 태도가 불손하다는 평을 듣는다는 부분이 나오긴 하지만 이것도 그가 받은 배척을 용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또한 태도에 대한 평판은 순전히 귀족들의 의견일 테니 베르테르가 받은 무시와 소외가 얼마나 비참했을지 짐작이 간다. 실연의 아픔에 이성을 잃은 것은 공감이 잘 되지 않았으나 이 장면의 모욕감과 울분 등은 공감되어 슬펐다. 그 이후 베르테르의 감정은 한없이 추락하고 불안과 우울 속에서 산다. 그리고 결국 그 감정이 그를 파국으로 데려간다.
다시 만난 베르테르와의 시간은 등장인물에 대한 더욱 섬세한 발견, 작품 속 소재와 구조의 변화와 의미, 인물의 선택에 영향을 끼친 사회적 맥락까지 많은 발견이 있었던 수확 좋은 재독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인간이 지닌 ‘감정’. 그 뜨거움의 아름다움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여 준다.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은 늘 미덕이 아니며, 때로는 절제가 더 나은 선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지나치게 솔직하게 살며 분노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알고, 뜨겁게 데워질 수 있는 나라는 인간에게 느꼈던 오만을 반성한다. 그것이 때때로 타인에게 상처와 부담과 무례를 경험하게 했음을 고백한다. 감정이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간 그 감정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과연 타인의 감정은 내게 책임이 없는가도.
베르테르는 자신의 사랑과 고통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그리고 그것에 솔직했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그 감정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으며 결국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의 슬픔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두의 책임처럼 느껴졌다. 감정에 솔직한 삶은 아름답지만 그 솔직함이 타인에게 어떤 무게로 전해지는지를 아는 일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통찰이다. 또한 타인의 슬픔과 고뇌에 내가 책임질 부분을 찾는 것. 그것이 원망을 듣는 것이 아닌 그 눈물과 고뇌를 멈출 수 있게 공감해 주는 것. 그것 또한 나는 많이 놓치고 살았다. 이제 감정의 깊이만큼 그 책임의 무게도 함께 들여다보며 살아가야겠다.
누군가 '고전을 읽는 것은 끝나지 않은 대화를 하는 것'이라 했다. 이제서야 나는 이 책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한 것 같다. 다시 이어질 그 다음 대화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