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집사입니다.

-뿌리과습과 관계의 거리

by 강미정


나의 일터는 학원이지만 사람들은 가끔 화원이냐고 농담한다. 입구부터 복도, 교실 곳곳에 식물들이 함께 살기 때문이다. 개원 전 인테리어를 할 때 건물 위에 유리 돔이 있어 그 아래 공간을 두고 천장을 막아야 했다. 그때 하늘이 훤히 보이는 돔을 올려다보며 ‘햇빛이 모이니 식물들이 살기 딱 좋겠구나.’ 하고 생각했고 예상은 맞았다. 집이 아닌 학원에 반려 식물을 두는 이유이다. 출근하자마자 식물들의 잎을 들여다보고 물을 주는 데 한 시간을 훌쩍 쓰고, 창가에서 멀어진 화분에는 식물등을 꼭 켜주는 나는 ‘식집사’다.


식집사는 반려 식물을 기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이지만 흔히 곁에서 삶을 함께하는 존재에게 쓰인다. 농촌진흥청은 2023년 국내 최초로 ‘식물 존엄성 선언문’을 발표하며, 식물을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반려자로 바라보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 선언에 따르면 반려 식물은 인간과 정서적 유대 관계를 맺는 생명체이며, 식물을 장식이나 소품이 아닌 동반자로 존중할 때 비로소 식물과의 반려 관계가 시작된다.


따라서 식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소유에 머문다면 식물의 반려자가 될 자격은 없다. 인테리어를 위해 식물을 그저 ‘배치’하고 미니멀한 수형을 만들겠다며 잎을 과하게 잘라 ‘소품’으로 두는 사람은 식물의 주인일 뿐 식집사는 아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충동구매와 선물로 초록 식구들을 맞이했고 식물에게 필요한 자리보다 내 눈에 예쁜 자리를 먼저 챙겼다. 식물이 죽으면 들인 돈과 시간을 아까워했고 선물해 준 이들에게 미안했을 뿐 정작 식물의 삶과 죽음에는 무심했었다.


그러나 죽어가던 식물의 회생을 기다리면서, 키운 지 5년 만에 드문 꽃을 보여준 녹보수가 장하다고 감격하면서, 교실 앞 고무나무의 상처를 볼 때마다 학생들이 장난을 치다 옆구리를 찍어 하얀 피를 흘리던 그날이 떠올라 마음 시큰해하면서 나는 식물의 반려자가 되어 갔다.


식집사로 살다 보면 식물들에게 인간의 삶을 배울 때가 많은데,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공간에서 식물을 기르다 보니 식물과 아이들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내가 가장 선명하게 배운 것은 ‘사랑하는 법’에 관한 것이다.


많은 식물학자들이 실내의 식물이 죽는 이유의 대부분은 지나친 사랑 때문이라 말한다. 예쁜 화분에 심고, 바람을 막고 물을 자주 주며, 비료를 아낌없이 쏟아붓는 행위가 모두 지나친 사랑이다. 식물을 잘 키워 보겠다고 바람을 막으면 증산 작용이 잘 일어나지 않아 뿌리가 흡수한 물이 밖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뿌리에 고이다가, 결국 썩게 된다. 물을 많이 주는 것만 과습이 아니라 물이 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과습이다. 또 잎을 예쁘게 다듬는다며, 자연스레 시들어 떨어져야 할 잎을 미리 떼어 버려 식물이 그 자리에 보호벽을 만들 시간을 빼앗아 상처를 감염시키기도 한다.


식집사로 살며 알게 된 것은 식물들은 적당한 거리를 둘 때 오히려 더 잘 자란다는 것이다. 화분 한두 개를 온 신경으로 들여다볼 때보다 여러 화분을 함께 키울 때 식물들은 더 건강했다. 함께 있을 때 주변 습도가 잘 유지되고, 내가 괜한 손을 덜 대니 식물의 몸살도 물을 너무 자주 주는 실수도 자연히 줄어든다. 여러 잎 중 조금 축 처진 잎을 발견했을 때 물을 줘도 죽지 않는다.


아이들도 그렇다. 과한 사랑과 관심이 오히려 아이들을 숨 막히게 만드는 모습을 나는 종종 보았다. 지나친 관심과 기대가 불안이 되어 마음속에 고여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할 때 아이들은 축 처진 잎처럼 힘을 잃는다. 그럴 때 아이에게 글을 쓰는 수업시간은 마치 잎에 바람을 쐬는 시간과도 같다. 바람으로 식물의 고인 물기를 날리듯 아이들은 글을 쓰며 스스로의 마음을 가볍게 털어낼 통로를 만들어 낸다. 나는 식물에게 바람을 보내어 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한다.


식물학자이자 식물 세밀화가인 신혜우는 식물상담소를 열어 사람들을 만나고 나눈 이야기들을 『이웃집 식물상담소』라는 책으로 엮어 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화분 속 식물들은 대부분 과한 사랑으로 죽는다며, 식물이 죽어간다면 사랑을 잠시 줄이기를 권한다. 식물을 오래 키운 사람들은 품에 안고 있다고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며, ‘내려놓는 마음’ 같은 것이 생긴다고도 했다. 포기가 아니라 잠시 내버려 두는 것. 그것이 여린 잎이 고개를 드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식물에게 배운다.


또한 식물은 말을 하지 못하기에 결핍을 형태로 드러낸다. 잎이 타들어 가거나 축 늘어졌을 때 화분을 엎어 보면 대개 문제는 뿌리에 있다. 뿌리가 엉켜 썩어 있을 때는 과감히 잘라내고, 남은 뿌리가 힘을 되찾을 수 있도록 물속에 꽂아두면 열에 아홉은 다시 살아난다. 줄기와 잎을 살리려면 결국 뿌리를 살려야 한다.


아이들의 문제 행동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행동만을 바로잡는 것은 빠른 해결처럼 보이지만 바른 해결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독서수업에서 책을 자꾸 읽어 오지 않는 아이가 있을 때 이에 대한 벌과 보상만을 강화한다고 해서 책을 싫어하는 마음이나 책 읽기가 버거운 이유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마치 타들어 가는 잎에만 물을 뿌리고 잘라 내면서 정작 화분 속 습한 뿌리는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늘 아이들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의 뿌리를 보려 애쓴다.


동물 행동학자 최재천은 알면 사랑한다고 했다. 말 없는 식물을 돌보기 위해 그 식물의 원산지와 품종, 생육 환경을 찾다 보면 어떤 온도와 흙을 편안해하는지 알게 된다. 결국 그 존재가 지닌 태생적 본성을 이해하고 그 본성을 펼치게 돕는 것이 어떠한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임을 나는 식물로부터 배웠다. 그 배움대로라면 누구나 주변의 얼굴들과 나 자신에게 보내는 내려놓는 마음으로서의 사랑과 믿음은, 가장 건강한 성장을 선물하게 될 것이다.



글을 쓰며 참고한 자료들


-이소영 『식물의 책』, 책 읽는 수요일

-신혜우 『이웃집 식물 상담소』다산북스

-농촌진흥정 「그린매거진」 vol. 233, 1월호, 2025

-최재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효형출판


2. 논문

-이영시. (2025) 「반려 식물의 윤리적 의미와 반려 식물 윤리 교육의 필요성 연구」. 서울교육대학교 교육 전문 대학원

-안진용. (2022, 4). 지금은 식집사 전성시대. 쿨투라, 48-51.


3. 기타(검색, 기사 링크 등)

-한국 도시농업 연구회 https://www.urbanagrikorea.com

-농촌진흥청 「식물 존엄성 선언문」

-연합뉴스 기사 "식물은 존엄한 존재" 농진청, 국내 첫 '식물 존엄성'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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