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츄에이션, 경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일단 내 어렸을 적 성장배경을 되돌아보면, 나는 지극히 평범하고 전통적인 성관념을 갖고 있던 부모의 밑에서 태어났다. 밑으로는 두 살 터울 동생이 한 명 있고, 겉으로 보기에 평범하고 평화로운 4인 가족이었다.
그러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어린 우리 남매의 거처는 새로 생긴 아버지 가정으로 정해졌고, 그게 서유럽으로 이민을 오게 된 계기다.
여전히 집에서는 가족의 끈끈함을 강조하는 와중에 우린 우리 남매를 애정으로 맞아준 새엄마와 새로운 '정상가족'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새로운 환경에 빨리 적응한다.
그렇게 사춘기 십 대가 됐을 때 그 애써 만든 정상가족이 다시 한번 조각났고 아버지, 동생, 나 이렇게 셋이 살게 되었다. 이 즈음부터 우리 셋은 가까운 한인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내가 갓 성인이 됐을 무렵 우리 가족은 완전히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났다. 지리적, 물리적으로도 그렇게 우리들은 멀리 떨어졌다.
그래도 가족 간에 애틋함이랄까, 이런 건 남았고 한국인들의 정서에 깊이 뿌리 박혀있는 서로를 향한 미안함, 아쉬움, 서운함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20살이었던가? 그쯤에 18살인 동생과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나: "난 결혼하면 절대 이혼 안 할 거야."
동생: "나도. 결혼을 할 거면 이혼은 없지. 근데 난 결혼 안 할 거 같아."
나: (충격) "정말? 아예 안 할 수도 있다고?"
맏딸로서 남동생에게 엄마역할도 했던 나는 그때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왜 그렇게 놀랄 일이었나 싶다. 내 동생은 늘 나보다 조금 많이 자유로웠고 진보적이었다. 어른들이 하는 말이면 곧이곧대로 믿고 지키던 나와는 달리, 스스로 생각해서 행보를 정하곤 했다.
어렸을 때 사실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엄마가 되는 게 꿈인 적도 없었고, 오히려 아이들을 돌보거나 챙겨주는 게 서툴고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어리면 어릴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어려운 존재였다. 귀엽긴 너무 귀여웠지만. 우리 남매보다 어린 아이들을 잠시라도 봐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그 돌봄은 늘 동생이 전담했다. 놀아주거나, 화장실을 같이 가주거나 하는 일은 나보다 훨씬 잘했다.
그런 내게 20대 초반,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임신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그때서야 나도 부모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상상하게 되었다.
"만약 피임에 실패해서 임신을 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