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ongoing...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차분하고도 진지하게 “네가 원하는 건 뭐니?” 하고 물어보기도 전에 내 몸은, 그리고 연애를 시작한 내 상황은 엄마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게 된 것이다. 정신을 멋대로 추월해 질주하는 몸의 현실이랄까!
그렇게 성인이 되고 20대가 되어 몇몇 썸과 연애를 거치며 나는 내 몸 건강을 제대로 챙길 정신도 없이, 차분히 내가 애초에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볼 새도 없이 임신걱정부터 하게 된 것이다.
참으로 원초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다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고 관계와 생활이 안정되면서 나는 서서히 크나큰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두려움의 그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니.
경제적 상황이 안정되어 만약 임신이 우연히 된다고 해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을 상태는 되었지만, 그렇다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를 하는 내 모습이 상상이 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이 만들어가고 있는 둘만의 여유로운 일상을 완전히 뒤집는, 인간 존재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나 우선순위 맨 윗자리를 차지하는 그런 경우가.
"음. 그래. 임신될 수 있겠지. 출산? 죽기야 하겠어. 신생아 육아?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데,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닥치면 할 수 있겠지. 혼자도 아니고 둘이서 하는 건데. 그리고 주양육자는 남편이 될 거니까(연애초반부터 우리 사이에 합의됐던 지점이다)." 이 정도의 느낌으로 꽤 오랜 시간 지냈다. 물론 피임을 계속하면서.
남편과는 일상적으로 이런 대화를 많이 했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생기면... 우리 아이들은 어쩌구... 아들이면 이런 거 하고 싶고 딸이면 이렇게 키우고 싶다... 등등
재밌는 건, 진지하게 "아이 갖고 싶냐"라고 물어보면 둘 다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떨 땐 "나중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마음에 준비가 되면?"이라고 답하기도 하고 어떨 땐 "못 키울 거 같아...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일상루틴이 완전히 망가지는 것도 두려워"라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내 또래 주변인들은 언니들부터 동생들까지 하나둘 아이도 낳고, 결혼도 하고 (내가 사는 곳은 유럽이라 순서는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데, 자녀가 꼭 부부사이에만 있는 것 또한 아니다) 하면서 나와는 다른, 유자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결혼을 일찍이라면 일찍 했던 터라 그걸로는 내가 앞서기도 했지만, 신혼 1,2년 남짓 지나고 출산을 하는 이들이 주변에 점점 늘어갔다. 나는 그걸 보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부러운 것도 가끔은 있었지만, 이질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마치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 같아, 내가 알던 친구, 지인이 갑자기 낯설어지거나 삶에 대한 관점이 나의 그것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가족, 지인들에서부터 직장을 통해 만난 사람들까지 가끔 우리 부부의 가족계획은 어떤지 물어보곤 했다. 물어보는 것 자체는 괜찮았다. 나도 친한 사이에선 물어보곤 하니까. 유자녀 지인에게는 어떻게 자녀를 가지게 됐는지 물어보기도 했고 무자녀 지인에게는 나중에라도 자녀를 갖고 싶은지 묻기도 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우리가 결혼을 했다는 것만으로 당연히 몇 년 안에 아이를 가질 것이라고 짐작하는 게 느껴졌다. 한국 사람들도 그랬지만, 내가 경험한 유럽인들도 비슷했다. 어쩌면 내가 보수적인 나라에 살아서 그런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