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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Nov 21. 2022

그럼에도 산에 오르는 이유

한 달간 매주 산에 오르며 느낀 점


 내가 스무 살 이후로 어딘가에 몰입했던 것이 (반쯤 미쳤던 것이) 두 개 정도 있는데, 바로 수영과 책이다. 스무 살 때 사귄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는 순수하고 어린 마음으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어릴 때 잠깐 배운 수영을 시작했다. 수영을 다시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아마추어 수영 대회를 뛰었고, 처음엔 당연히 기록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될 때까지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같은 대회에서 1년 뒤 금메달을 땄다. 서른 살 때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 앞에서 어디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갑자기 이 읽고 싶었고, 책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 책을 제대로 읽고 싶어서 독서 모임을 만들어버렸다. 읽은 책도 얼마 없으면서 독서모임을 만들다니, 그땐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도 나처럼 책을 통해 위로를 받으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화위복으로, 기회로 전환된 위기는 나에게 큰 용기가 되었고,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힘들 때마다 '위기는 늘 기회다'라고 되뇌며 기회로 전환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올 한 해 참 힘들었다. 지난달 10월 중순에는 스트레스 역치를 넘어섰고, 문득 ‘산이나 타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한창 바쁠 때라 주말 하루를 산에 투자하기는 부담스러웠고, 야간 산행을 택했다. 가깝고 난이도가 낮은 인왕산을 택했다. 야등은 처음이기도 하고, 밤이라 무서웠지만 그래도 오르고 싶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인왕산에 올랐다. 인왕산 정상에 도착하니 밤하늘과 어둠 속 불 켜진 서울의 밤은 너무 아름다웠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불빛 속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개개인의 애환이 담겨있겠지만, 그래도 예뻤다. 서울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스트레스로 엉키고 어둑어둑해져 버린 나의 마음에도 불이 조금 켜지는 기분이 들었다.


 산에 위로받았던 그날의 기분을 한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 인왕산 다녀온 그다음 주에도 산에 올랐다. 그렇게 등산에 빠지기 시작했다. 평일엔 주말만 기다리다가 주말이 오면 산을 탔다. 그렇게 5주간 매주 탔던 산은 10 산이 되었다.

인왕산, 오대산, 사패산, 선운산, 도봉산, 불암산-수락산 연계, 청계산, 사패산-도봉산 연계


깔딱 고개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것만 같은 구간을 ‘깔딱 고개’라고 한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에 주로 찾아온다. 정상이 다가오기 직전, 깔딱깔딱 숨이 차오를 때면 '아, 그래도 지금 내 일상보다 깔딱 고개가 더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깔딱 고개를 넘을 때면, 일상의 힘듦을 잠깐 잊게 된다. 발걸음에 숨소리를 담으며 한 걸음씩 집중하며 올라간다. 몸은 산을 오르고 있지만, 사실상 나 자신의 한계를 올라타고 있었다.


 그렇게 깔딱 고개를 넘어 정상에 오르면 평지에서 볼 수 없는 절경이 펼쳐진다. 그때면 모두가 주섬주섬 휴대폰을 들어 올린다. 사진에 다 담기진 않지만, 눈에도 오래 남진 않지만, 주어 담고 싶고, 가져가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같은가 보다. 이런 게 사랑일까. 깔딱 고개 고생 끝의 행복일까. 지금 내가 넘고 있는 일상 속의 깔딱 고개도 정상이 올까.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등산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이 얼마나 든든한 말인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산은 묵묵히 변치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킨다. 내일 가도, 10년 뒤에 가도,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오늘 오르지 못했던 산이라고 초조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에 또 오면 되니까. 오르다가 너무 힘들면 중도 하산해도 괜찮다. 다음에 컨디션과 체력을 더 길러서 정상에 오르면 되니까. 변하지 않는 것이 주는 위로와 포용력, 그 자체가 등산이며 그것이 바로 산에 오르는 이유였다.


 올 한 해 참 힘들었다. 스스로가 약한 멘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도, 멘탈이 탈탈 털렸으니 말이다. 그런 어려운 일들이 하나씩 오면 좋겠지만, 한순간에 몰려오니 쓰나미가 되었다. 번아웃이 왔었다. 누구에게나 고달픈 시기가 있다.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산을 오르며 위로 환대를 받았다. 이게 진짜 산의 매력인가 보다. 이렇게 사랑하는 것이 하나 더 생겨서 참 좋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자연이 줄 영감, 위로, 치유, 행복 등을 오래 만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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