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욤 민지 Jan 15. 2023

30대 여자의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아직 못한 겁니다.>

 절친들이 결혼 소식을 잔뜩 전하던 작년 봄, 내 연애는 끝이 났다. 1년 반을 만나던 남자친구와 결혼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혼자가 되었다. 헤어진 이후 성과는 없었지만 8번의 소개팅으로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취준생의 반복되는 회사 면접처럼, 자기소개를 대본 없이 툭 치면 읊을 정도로 술술 나왔고 상대의 질문도 예상 질문에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소개팅이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지하철에서 허무함이 밀려왔다.


 절친들도 거의 다 결혼을 했다. 카카오톡 프로필을 넘겨봐도 소주 한 잔 나눌 친구들이 사라졌다. 같이 놀던 나의 친구들은 임신준비와 육아에 치여 정신이 없다. SNS를 보면 이젠 후배들까지 결혼사진으로 가득하다.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사람을 찾고 만나기가 너무 어려워


 누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했던가,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는 나이테가 코르셋처럼 나를 조여 온다. 생물학적 나이(여자의 가임기)에 조급해지며 사회적 시선에 나를 끼워 맞추기도 했다. 비혼주의는 아닌데 운명적인 만남을 기다리던 콩깍지도 벗겨졌다. 결혼은 현실이니까 더 나이 들기 전에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결제해 보는 것도 나를 위한 투자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결혼 시장에서 나의 현주소는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혼 정보 회사 홈페이지 대문을 기웃기웃하면서 상담 버튼을 클릭하려다가 말았다. 낭만이 없다고 해야 할까. 이 와중에 낭만 타령을 하는 나를 보며 '나 아직 철 덜 들었구나' 싶다가도, 사랑의 시작만큼은 낭만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낭만적인 사랑이 시작 안 되는 이유


 20대에는 사랑이 곧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상대와의 케미에 더 집중했던 연애였다. 그러나 30대의 연애는 관점이 좀 달라진다. 처음 알게 되는 자리에서 '비혼주의 여부'를 먼저 확인하게 되고, 이 사람이 '좋다/싫다'만 보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살 수 있을까?'를 따지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의 계산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상대의 현실적인 조건에 목을 매는 건 아닌데, 비슷한 조건이 아니면 어떤 갈등이 올지가 예상이 되다 보니 미래가 그려지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이 꺼려진다.

 '그래,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얼마나 거품인지도 알게 되었다. 세심한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 모습이 좋아서 만났다가 예민한 모습에 질려서 이별을 해보니 이젠 콩깍지도 쉽게 씌지 않는다.

 또한, 연애를 시작하고 끝이 나는 과정에서 오는 허무함도 한몫하는 것 같다. 20대의 나였으면 쿨하게 만나볼 사람도 '경험'에 발목 잡혀서, 지금은 시작조차 머뭇거리게 된다. 혼자여도 누릴 수 있는 취미도 많아졌고, 이 사랑이 끝이 나도 다음 사랑이 온다는 것도 알게 되니까 에너지 소모가 심한 연애는 오래 지속할 수가 없어졌다.



저,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했습니다만.


 지난 명절, 친척집에서 "언제 결혼하니?"가 아니라 "요즘은 결혼 안 해도 더 재밌게 잘 살 수 있어!"라는 순화된 말을 들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 결혼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거예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우리 엄니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친척들 앞에서 애써 웃어 보이는 엄마의 표정이 괜히 무서웠다. (ㅋㅋㅋㅋㅋ)

  "어휴, 쟤는 저렇게 당당하다니깐."


 어릴 땐, 지금 내 나이가 되면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힘든 상황에서 툭하면 흔들리고, 갈팡질팡하고, 지나간 사랑과 인연에 울기도 한다. 내가 생각한 어른 모습은 아니지만 결혼의 문턱을 넘기 위해 나름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노력만으로는 절대 될 수 없는 게 사람의 인연인가 보다.


 누굴 만나야 할까. 어떤 존재가 나랑 맞는 사람일까. 사랑엔 답이 있을까. 그냥 친구처럼 재밌게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좋은데, 인생 친구 한 명 구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인지 혼란스럽다. 다만, 조급함을 내려놓기 위해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려나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또한 '글감'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